『매일이, 여행』 매일을 여행 첫날처럼 지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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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데에도 각별한 애정을 잘 품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테면 오래되고 낡았는데도 추억이 담긴 옷이라 버리지 못하는 사람, 작은 화분이라도 말라 죽으면 가슴 아파하는 사람,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상대방이 정성껏 끓여주곤 했던 달달한 차의 맛을 다시 만날 때까지 소중히 기억하는 사람, 기르는 반려 동물의 소소한 습관을 유심히 보고 그 의도를 잘 파악하는 사람. 이런 식이라면 누구나 소소하게 애정을 담는 무언가가 하나둘쯤 있을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매사 그런 사람이다. 작은 것을 유심히 보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오늘 새로이 알게 된 것은 무엇인지 항시 귀와 눈을 열고 있는 사람. 그녀의 문장은 다른 나라에서 다른 시간에 쓴 것인데도 마치 지금 내 마음을 알아준 것처럼 공감이 간다. 그래서 20세기 말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래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가끔 눈에 띄는 소설이나 글이 반갑게 느껴지는 걸까. 이번 그녀의 두드림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다. 그녀의 내밀한 생각을 더 농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소설과 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책을 만들기 위해 여러 번 완독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읽을 때마다 매번 눈시울이 붉어지고 책상 앞에 앉아 누가 볼 새라 몰래 눈물을 찍어내곤 했던 꼭지가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12년간 함께 했던 러브라는 개의 이야기를 담은 ‘작별의 날’이다.

“건강할 때는 별 거 아니었던 일에 기뻐하기도 하고 눈길이 그윽해지고 행복해 했다. 그 북실북실한 털에 얼굴을 묻는 것도,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싫증난 적이 없었지만, 어쩌면 이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하자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복도에서 마사지를 해주다 들러붙어 잠들곤 했는데, 그때는 서로가 병을 잊고 온기를 나누었고 행복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날 밤 그녀는 산책하러 나가도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다시 목줄을 채우고 걷기 시작했다. 몸은 무겁고, 숨은 가쁘고, 그녀는 30미터 정도를 걷더니 더는 오고가도 못했다. 그리고 헉헉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울면서 말했다.

“그래, 우리 같이 산책했던 거, 평생 잊지 않을게.”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산책이 마지막이라는 걸, 아프도록 절절하게 알고 있었다. 지금도 밤에 그곳을 지나면 나는 울음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함께 밖에 나가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해 준 것이 정말 기뻤다.”

“개는 이미 절반은 투명해진 듯한 인상이었다. 오늘 아침과도 다른 모습이었다. 몸은 여기 있지만 혼은 절반은 빠져 나간 듯했고, 눈도 다음 세계를 보고 있었다. 나와 함께 보낸, 이 잡다한 일이 많았던 행복한 생활로부터 떠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에는 의식을 잃었고, 이틀 후에는 끝내 세상을 떴다.”

사소한 일도 열의를 다해 마주하는 사람이 하물며 12년간 기르던 개를 보내는 내용이니 얼마나 절절할까 싶었는데 의외로 그녀는 담담했다. 오히려 그런 조용한 죽음으로부터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마지막을 배운다. 침착하고 신중해지려고 매순간 노력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 또한 12년간 함께하고 있는 고양이가 생각나서 읽을 때마다 ‘고양이를 떠나보낼 때가 되면 나도 이렇게 마음먹어야지’ 하는 다짐을 항상 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보고, 읽고, 맛보고, 만지고, 말하고, 떠나고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다양한 사변을 담고 있지만 결국은 ‘여행’이라는 컨셉으로 묶여 있다. 바나나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는 여행은 특별한 여행도 있지만 대개는 일상의 순간들이다.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떠날 수 있다. 예컨대 하나하나의 관계, 그게 사물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주변의 모든 사소한 것들과의 관계를 우리가 여행지에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처럼 돌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고 인생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 책의 원제는 ‘인생의 여행을 떠나다[人生の旅をゆく]’인데 여기서의 ‘타비[旅]’는 일반적으로 친구들과 모여서 삼삼오오 떠나는 등의 단순한 여행을 뜻하는 ‘료코[りょこう]’와 달리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떠나는, 그래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만날 수 있는 여행이라고 한다. 가히 인생 그 자체를 ‘타비’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국내를 벗어나는 여행을 떠날 때, 다 깜빡해도 절대 깜빡하면 안 되는 단 한 가지가 바로 여권이다. 『매일이, 여행』이 독자들에게 일상의 여행을 떠나게 해주는 계기이자 가장 중요한 필수품인 여권 같은 것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의 모양새를 여권처럼 디자인했다. 여권 케이스처럼 필름 케이스를 제작하느라 제작비도 더 들고 제작일도 더 걸렸다. 가을의 정점에서 독자들에게 유의미한 일상 여행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