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는 저마다의 성격이 있다.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 자연으로부터 독립되어 설계되는 그 공간들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다. 그런 일상이 층층이 쌓여 공간의 이름을 들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옥탑방’을 예로 들어 보자. 무엇이 떠오르는가? 옥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독립된 별채에 올라가기는 고되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야경과 당연하게도 평상이 있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쩐지 꿈과 낭만을 잊지 않고 남들보다 살뜰하게 여유를 즐길 것만 같다. 어디까지나 이미지가 그렇다는 뜻이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인공의 거처를 옥탑방으로 정하는 데는 이런 이미지가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반지하’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집 안에는 온 종일 해가 들지 않고, 여름이면 습기를 먹어 부풀어 오르는 벽지와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이 반지하라는 공간을 대표하는 이미지들이 아닐까 한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공간처럼 보이는 옥탑방과는 달리 반지하는 세상으로부터 몸을 숨기고 단절되어 있는 공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반지하에도 낭만과 꿈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토끼 굴에 빠져든 백 년 전의 앨리스와
  돈에 쫓겨 반지하로 꺼져 든 앨리스들과 만났다

  생의 반이 다 묻힌 반지하 인생의 나는 
  생의 반을 꽃피우는 이들을 만나 목련 차를 마셨다

  서로 마음에 등불을 켜 갔다 

  -「반지하 앨리스」

신현림 시인에게 ‘반지하’라는 공간은 특별하다. 반지하에서 10년을 살았다는 시인은 그 누구보다 반지하와의 질긴 인연을 자랑한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시간은 팍팍한 삶을 담아내던 그릇이었던 반지하를 시에 영감을 주는 문학의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결국 제목에까지 선명하게 박힌 ‘반지하’는 반지하 생활자로서 시인이 느낀 삶의 애환과 그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려하려는 문학적 시도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시인인 동시에 사진가이면서,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동시까지 쓰는 재주 많은 신현림 시인은 시집을 출간하면서 동명의 제목으로 사진전을 개최했다. 8월 3일부터 8월 10일까지 류가헌 갤러리에서 개최되었던 사진전은 담당 편집자로서 시와 사진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 작업의 흐름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시집에도 직접 찍은 사진 작품을 함께 수록하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공간에 대해 쓴 시에는 사진을 수록하지 않았다. 활자만으로도 시인이 초대하고자 하는 공간의 이미지 속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사진전에서 시인이 찍은 공간에 관한 사진을 보니 교정지로 보았던 시들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기이한 감각이었다. 오늘은 <책의 사생활> 코너인 만큼 시집 속의 시 한 편과 시집에는 수록되지 않은 사진 한 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시인이 포착한 작은 단상이 사진과 시라는 다른 형태의 예술로 뻗어나가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신현림, 「사과 여행, 엄마의 오래된 방, Uiwang, Korea」, Inkjet Print, 2017-1 ⓒ류가헌갤러리>
  오래된 방은 헐릴 거네
  내일이면
  나무 기둥과 구들장은 들리고
  아무것도 없는 길 위에
  잊힌 사람들의 꿈과 슬픔이 흐려지네
  잊힐 엄마의 이야기도
  시냇물같이 흘러 내게 오네  잊히기 전에
  엄마가 남긴 말과 기억을 담아
  푸른 저녁 한 장의 시로 남겨둘 때  -「오래된 엄마의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