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의 말하기

130_자기만의-방-500x852

「인셉션」 (Inception, 2010). 이 영화에서 타인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된 사람들이 그토록 무의식에 심고 싶어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말로 된 ‘생각’이 아니라 ‘경험’이었다. 꿈이라는 형태의 경험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속에서 감정을 만들어 내고 생각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구조부터 디테일까지 꿈을 세팅하고 꿈의 주인공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영화 속에서는 ‘꿈 설계자’라고 부른다.

버지니아 울프는 꿈 설계자다. 그녀의 상상에 시공을 부여하고 그곳의 공기와 바람 그리고 노을의 빛까지 세팅하여 그곳으로 청중을 초대한다. 옥스브리지와 펀엄, 셰익스피어의 누이가 있던 방과 그녀가 모욕을 당한 극장 앞으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강단 아래에 앉아 그녀의 강연을 듣던 모든 여성들은, 그 이야기 안에서 주인공이 된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어떤 여성도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가질 수 없었다.”라는 말에 우리들 중 대부분은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나라면 “어떤 여성”의 예외를 찾는 데 온 힘을 다하겠지만 기록물이 없는 상태에서 열정만으로는 결론에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이에 대한 버지니아 울프 식의 접근은 이렇다.

그녀는 셰익스피어의 ‘그 시대’를 재현한다. 바로 가상의 인물인 셰익스피어의 누이가 되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통해서. 그녀의 가슴속에서 비틀거리는 재능과 그녀를 둘러싼 집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곳을 탈출하는 한밤의 결정과 그 끝의 절망을 그려내는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하여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이야기, 과연 셰익스피어 시대의 여성들은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개연성 있는 사실들을 얻어낼 뿐만 아니라 재능 있는 여성의 삶이 왜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필연을 포착한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는 결론 내린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어떤 여성도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가질 수 없었음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어떤 여성도 셰익스피어의 마음 상태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 상태’, 픽션이 아니고서는 증명할 수 없는 진실에 다다른 것이다.

 

# 그러므로 나는 소설가로서의 모든 자유와 파격을 이용하여 내가 여기 오기 전 이틀 동안의 이야기, 다시 말해 여러분이 내 어깨 위에 올려놓은 주제의 무게에 짓눌려 그 문제를 숙고하며 일상생활의 안팎에서 내 견해를 이끌어 낸 과정을 여러분에게 말할 것입니다.

-1장 중에서 

『자기만의 방』 앞부분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그녀가 경험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는 선언이다. 이 문장을 나는 방안의 회전의자에 앉아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었다. ‘소설가로서의 모든 자유와 파격을 이용하여……’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일어서서 읽었다.

첫째, 그녀는 여자를 남자의 뮤즈이거나 성공한 삶의 트로피로 묘사하며 여자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다른 픽션들에게, 삶의 진실에 다다르는 도구로서의 픽션이란 무엇인지 보여줌으로써

둘째, 여성을 기록하지 않은 수많은 역사가들의 논픽션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재현해내는 도구로서의 픽션이란 무엇인지 보여줌으로써

셋째,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감추기 위해 여성을 무시하는 방법을 택한 그 시대의 남성들에게, 픽션을 통해 자의식을 초월한 한 인간으로서 말하는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여성과 픽션’이라는 위대한 경험을 설계했다.

민음사 문학 1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