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 날, ‘겨울여행(Winterreise)’이라는 원제를 가진 시집이 출간되었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22번. 청량한 표지 색감이 이육사의 은쟁반과 청포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 시집에 실린 두 연작시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연가곡으로도 유명하다. 뮐러는 늘 그의 시가 가사가 될 것이라 염두하며 시를 썼던 것 같다. 스물한 살 패기만만한 시인이 쓴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70쪽_빌헬름 뮐러

“나는 악기를 연주할 줄도 노래를 부를 줄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시를 짓는다면, 그것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면서 연주를 하는 것이다. 멜로디를 내 힘으로 붙일 수 있으면 나의 민요풍 시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질 것이다. 그러나 확신컨대, 나의 시어에서 음률을 찾아 그것을 내게 되돌려 줄, 나와 비슷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슈베르트였던 것이다. 슈베르트는 어느 날 찾아간 친구의 집에서 우연히 뮐러의 시집을 읽고, 너무 좋아서 친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시집을 가지고 돌아와 즉석에서 몇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무엇이 그토록 슈베르트를 뮐러에게 끌리게 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지극히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뮐러의 성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찬탄한 바와 같이 뮐러는 순수하면서도 소박한 민요 시인이었다. 투명하고도 솔직하게 감정을 들이미는 그(혹은 그의 시적 화자)는 아래 시구에서도 느낄 수 있다.

 

고개를 들어 밝고 맑은 눈으로

하느님이 보낸 화창한 아침을 보아라!

하늘에는 종다리가 뱅뱅 떠돌고,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사랑이 고통과 근심을 불러일으키네.

―「아침 인사」에서

 

또 다른 이유는 「겨울 나그네」 시 전반을 감싸는 비통하고도 허무주의적인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겨울 나그네」는 사랑하는 여성에게 버림받은 주인공이 정처 없이 떠돌다가 마침내 안식(혹은 죽음)을 찾는 이야기다. 때문에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시종일관 애상이 넘치며 전체적으로 어두운 정서가 가득하다. 슈베르트는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 해인 1827년, 그의 나이 서른 살에 「겨울 나그네」를 작곡했다고 한다.

 

168쪽_슈베르트

 

 

아! 나처럼 비참한 처지의 사람은

그런 화려한 착각에 금방 넘어가지,

얼음과 밤, 그리고 공포 저 너머에

밝고 따뜻한 집이 있다고 생각하지.

사랑하는 이가 그 안에 살고 있다고 —

내가 잘하는 장기는 착각뿐이구나!

―「착각」에서

 

169쪽_ 겨울나그네 악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여러 성악가들의 음색으로 감상할 수 있다. 국내에는 정명훈과 연광철이 함께한 음반이 있으며, 김재혁 시인은 율리우스 파차크, 한스 호터, 페터 안더스, 프리츠 분덜리히, 페터 슈라이어 그리고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등을 추천한다.

 

(영상 보기) 멕시코의 테너 프란치스코 아라이자가 부른 「겨울 나그네」(로프트뮤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