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명언』 끊임없이 결핍을 느끼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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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평생 끊임없는 욕구 불만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어떤 이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애인을 찾아 헤매는가 하면, 어떤 이는 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항상 외로움을 호소한다. 대부분은 어릴 적에 경험했던 애정결핍의 결과인데,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결핍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채워 나가면서 투쟁의 삶을 살기도 하고 그럭저럭 살아내기도 한다.

반면 일부는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 결핍을 확대 재생산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를 설명해 주는 인문학적 근거를 바로 『별별명언』에서 찾을 수 있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밑 빠진 독’은 만족을 모르는 육체이고, ‘밑 빠진 체’는 생각 없는 영혼이다.

욕망하던 대상이 채워졌는데도 대상을 바꾸어 끝없이 욕망하는 것을 ‘지조’ 없는 상태라고 한다. 욕망은 지조 없이 그동안 추구하던 대상에서 새로운 대상으로 향하게 된다. 플라톤은 대상에 대하여 지조 없는 이런 상태를 ‘망각’이라고 한다. 우리의 육체가 무절제한 욕망에 한없이 미끄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동훈, 『별별명언』에서

즉 끊임없이 결핍을 느끼는 사람을 ‘밑 빠진 독’에 비유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결핍을 채우고 나서도 만족을 모르는 이유는 그의 영혼이 ‘밑 빠진 체’와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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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학자 김동훈 선생님의 설명을 읽는 중에 나는 지인 한 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이 선망하는 결혼을 하였고 가족이 원하는 아들딸을 낳았고 자신이 목표했던 직업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많은 돈, 또 다른 연인, 더 나은 직장을 계속 갈구한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 그 친구는 더 바랄 것이 없는 행복한 사람으로 비치겠지만, 나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저려 온다. 앞으로도 결코 멈출 것 같지 않은 그 허무하고 서러운 욕망이 너무도 크기에 옆에서 지켜보는 것조차 감당하기가 힘들다.

그가 계속해서 욕망의 대상을 바꾸면서도 더 큰 결핍에 짓눌리는 원인은 바로 ‘밑 빠진 체’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결핍의 근원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대면하기보다는 반복적으로 다른 욕망을 찾음으로써 진실을 회피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 욕망은 결코 진정한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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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로댕의 「다나이드」(1889)는 지옥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형벌을 받고 있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다.  조각은 찍는 방향에 따라 느낌이 다른데, 이 각도가 가장 처절해 보인다. 초점을 잃은 공허한 눈 때문이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것이다. 다시 한 번 살아가는 이유를 점검해 봐야겠다.

 

 

인문교양팀 양희정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