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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사생활이 아닌, 주변인의 사생활부터 이야기 해 볼까 한다. 얼마 전 처제가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한 중견 식품회사에 다니는 그는 그렇지 않아도 경기 남부의 신도시에서 강남까지의 출퇴근에 힘들어하던 차인데, 이제 입덧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힘겨운 육아 생활이 빤히 보이는데도, 차라리 쌍둥이면 좋겠다는 처제. 아이 둘을 갖고 싶긴 한데 육아 휴직을 연달아 두 번 쓰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어제는 한 작가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그는 생각보다 빠르게 아이를 갖게 되어 반가움 마음과 혼란한 마음이 뒤섞인 상태로 보였는데, 무엇보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멀리에 계시고 남편은 직장에 나가야 하므로, 이른바 독박 육아를 할 것 같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지, 하고 끄덕인 것은 아니고 최대한 괜찮다는 격려를 하고 싶은 작은 몸짓이었는데…… 잘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좋은 글 쓰시기를, 그의 경력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임신한 소설가가 들려준 이야기. 쌍둥이를 키우는 친구가 있는데, 아이를 데리고 산책이나 외출을 나서면 주변에서 그렇게 한마디씩 거든다고 한다. 아이고, 힘들어서 어떡해. 겨울인데 아이 옷이 얇아서 어떡해. 여름인데 땀띠 나게 유모차에 누워만 있으면 어떡해. 미세먼지 많은데 밖에 나와서 어떡해. 이래서 어떡해. 저래서 어떡해……. 엄마들은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들은 모두 『82년생 김지영』의 지영 씨보다 서너 살 아래의 여성이다. 남자인 내가 여자로서 평생 겪어야 했을 그들의 괴로움, 당황스러움, 고통스러움, 상처받음 모두를 쉽사리 넘겨짚긴 어렵다. 그러나 그 책을 읽고 나서의 나는 읽기 전과의 나와 확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말할 때, 다만 조용히 듣고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임신부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나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해야 할 일은 무척이나 많겠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제대로 해 나갈지는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고민에도 여성의 목소리가 우선이겠지만, 확실한 것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 사이의 격차이다. 그리고 그 격차에 의해 새로운 변화에 참여 여부가 달라질 것이다. 나는 함께하고 싶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남자이고, 이 변화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다면, 『82년생 김지영』은 꽤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