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오지랖 넓은 친지에게 ‘설득’당해 파혼한 젊은 여자의 미래는?

세계문학전집348_설득_입체북

앤 엘리엇, 그렇게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그렇게 뛰어난 미모와 지성을 자랑하는 열아홉 살의 처녀가 내세울 것이라곤 자기 자신밖에 없는 젊은이와 약혼을 하다니! 불안정한 직업에서 나올 수입 외에는 다른 재산을 모을 가능성도 없고, 출세를 보장해 줄 친척도 없는 젊은이와! 그건 정말이지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며, 레이디 러셀로서는 생각만 해도 슬픈 일이었다. 앤 엘리엇, 아직 젊고, 아직 많은 사람을 사귀지도 못한 그녀를 집안도 재산도 없는 사람에게 빼앗기다니! 아니, 극도로 지치고 근심에 찌들어 젊음을 잃게 할 결혼의 구렁텅이로 빠지다니! 그건 막을 수만 있다면 막아야 하는 결혼이었다. 자신이 친구의 자격으로 적절히 개입하고, 거의 어머니 같은 사랑과 어머니 같은 권리를 가진 사람의 자격으로 항의해야 했다.(42~43쪽)

 

제인 오스틴의 『설득』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보겠다. 한 가난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가 있다. 그런데 가깝게 지내는 친지 아주머니가 그딴 놈이랑 결혼하기 아깝다고 설득하며 만류하자 결국 파혼하고는 그 후로 팔 년 간 방황하며 ‘노처녀’로 늙어 간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인생에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나는데, 사실 결혼상대로 보잘것없었던 그 남자는 이번에는 성공한 후 금의환향하여 사교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자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작심하고 결혼 상대를 찾으려 돌아왔다며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여자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이 남자(웬트워스 대령)는 그녀(앤)과 제대로 밀당을 시작한다. 웬트워스 대령이 앤이 마차를 타도록 손을 잡고 도와주자, 앤이 가슴 떨려 하는 이 대목을 보라.

 

웬트워스 대령은 입을 다문 채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려 거절할 수 없는 몸짓으로 그녀가 마차에 타도록 도와주었다. 그랬다. 그가 한 일이었다. 그녀는 마차에 앉아서, 그가 자기를 그리로 데려다주었으며, 그의 의지와 손이 그렇게 했고, 그가 자신의 피로를 알아채고 휴식을 주려고 결심한 덕분에 거기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이 모든 행동이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을 분명히 알려 주었다.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작은 사건은 앞서 있었던 모든 일의 완성인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를 용서할 순 없었지만 그는 그녀에게 냉정하지 못했다. 과거의 일로 그녀에 대한 원망과 분하고 억울한 감정을 간직했으면서도, 또 앤을 전혀 개의치 않고 다른 여자와 가까워지고 있었으면서도,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지 못했던 것이다.(136~137쪽)

 

앤은 되살아나는 사랑의 감정에 혼란스러워한다. 과거에 파혼하라고 설득했던 장본인인 레이디 러셀은 가족과 다름없는 친지이자(사실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친구다.) 앤 가족의 대소사에 항상 현명한 의견으로 도움을 주는 분이었다. 그 어른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포기했던 앤은 웬트워스 대령이 성공해서 돌아오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레이디 러셀은 앤이 항상 사랑하고 의지하던 어른이었다. 그런 분이 그렇게 꾸준하고 자상하게 충고를 거듭하자 결국은 설득당하고 말았다. 자신의 약혼은 실수였고 경솔하고 부적절한 일이었으며 성공의 가능성도 별로 없고 그럴 가치도 없는 것이라 믿게 되었다.(44쪽)

 

이들이 어떤 엔딩을 맺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로 남겨 두겠다. 그러나 주인공 앤의 선택이 과연 옳았던 것일까에 대해서는 조금 더 얘기해 볼 만하다. 앤이 웬트워스 대령에게, 지난날의 선택에 대해 언급하는 이 장면을 보자.

 

옛일에 대해 생각하며 뭐가 옳고 그른 것이었는지, 그러니까 제가 한 행동에 대해서 공정하게 판단해 보려고 했는데요, 제가 한 행동 때문에 크게 괴로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행동이 옳았다고, 당신도 이제 더 잘 알게 되면 좋아하게 될 어른의 충고를 따른 것이 전적으로 옳은 행동이었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분은 제게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세요. 하지만 제 말을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분의 충고가 옳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아마도 결과만이 그것이 좋은 충고였는지 아닌지를 말해 줄 수 있는 그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리고 저라면 그와 비슷한 어떤 상황에서도 같은 충고를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그분의 충고를 따른 것은 옳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만일 제가 그 충고를 따르지 않았더라면 약혼을 포기했을 때보다 그걸 지속시켰을 때 더 마음고생을 했을 것 같아요.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테니까요. 지금은 인간에게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저 자신을 나무랄 이유가 없어요. 그리고 제가 알기로도 강한 의무감은 여성의 성격으로 나쁜 것이 아니니까요.(356쪽)

 

어른의 충고를 따랐던 자신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앤의 대사를 보면 앤은 확실히 안정 지향에 자기변호를 잘하며, 의무감과 책임의식이 강한 듯하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앤이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웬트워스 대령과 또다시 사랑을 확인하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도 있겠다. 편집자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웬트워스 대령의 순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따름이다. 영국 판 ‘위대한 개츠비’ 아닌가. 그녀가 팔 년 전에 레이디 러셀의 설득을 무시하고 웬트워스 대령과의 사랑을 택하며 ‘모험’을 시작했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오지랖 넓은 어른의 의견이 두 연인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민음사 편집부 허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