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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건은 3년 전 「싱크홀」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데뷔한 신인 작가입니다. 두 남녀의 정사 장면이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집요한 소설이었는데요, 그 정사라는 게 말이죠, 표현하는 에로스적 행위라기보다 숨기는 장막의 몸짓이어서 무척이나 매력적인 작품이었어요. 행동이 과감하고 자극적으로 변해 갈수록 불안과 공포도 커지는 과정이 마치 옮겨 붙는 불길처럼 자연스럽고 무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최영건 작가가 돋보이는 건 의도적으로 선택한 통속적인 소재나 속물적인 캐릭터와 상반되는 심리 묘사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행동이나 상황에서 발견하는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욕망, 불안, 권태, 혐오…… 말하자면 미지의 감정들. 그렇게 보면 통속적 소재와 속물적 캐릭터들은 미지의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익숙함이라고 봐야겠죠.

작가가 두 번째로 선보인 소설은 2015년에 문학잡지에 발표한 「감과 비」예요. 나무에서 떨어지는 감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즉 저항할 수 없는 시간이 가져다주는 불가항력을 드러내는 소설로 노년의 시간을 흥미롭게 펼쳐 보이는 작품이었어요. 제가 최영건 작가에 대한 신뢰와 호감을 품게 된 건 이 소설부터라고 하는 게 맞겠어요. 구조, 비유, 상징 들이 절묘하게 균형 잡힌 최영건 소설은 한적한 곳에서 만난 근사한 집처럼 압도하는 매력이 있었거든요.

공기도미노_입체북

『공기 도미노』는 최영건 작가가 처음 출간하는 책이고, 장편소설이고, 매력적인 구조와 형식에 대한 감각이 무척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불륜, 가정불화, 세대 차이, 계급 차이에서 오는 총천연색 갈등. 내용만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비극, 비참이라고밖에 할 수 없겠지만 그 표현, 그 서사의 진행 방식은 기묘하게 아름다워요. 쓰러지는 도미노를 닮았기 때문이겠죠. 도미노는 쓰러지기 위해 세워지는 장난감이고, 제가 아는 가장 아이러니한 구조물이지만, 아이러니야말로 장난의 본질이므로 도미노는 계속 쓰러집니다. 쓰러뜨리기 위해 세우고, 세워진 뒤에는 또 쓰러지고…….

독립적으로 서 있지만 어느 하나가 쓰러지는 순간 하나를 제외한 모두가 그 영향 아래 놓이는 도미노의 세계. 도미노가 쓰러지듯 한 사람이 쓰러지자 모두가 붕괴되고 마는 『공기 도미노』의 세계. 이 독특한 플롯은 현대인으로서 느끼는 혼자인 듯 아닌 듯, 함께인 듯 아닌 듯한 비애의 감각을 세밀화처럼 묘사해요. 최영건이 포착하는 세계의 이미지가 그렇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들,  이른바 ‘도미노 인간’의 모습이 또한 그렇겠지요.

아직 보여 줄 게 더 많은 최영건 작가의 단편소설이 《릿터》 6월호에 실립니다. 이번에는 도미노처럼 쓰러지지 않아요. 대신 비 오는 어느 날 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불이 나가 버리죠. 일단은 여기까지. 기대하셔도 좋아요. 정말로요.

 

 

민음사 편집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