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의시230_혜성의 냄새_입체북

 

 

어떤 나이는 노래가 된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가 없었다면 서른은 지금보다 훨씬 가난한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지나서 마흔이 되면? 마흔에 대한 노래가 있었나? 시는 있다. 문혜진 시집 『혜성의 냄새』에 수록된 두 번째 시 「누군가 내 잠 속을 걷는다」. 노래가 되려는 걸까? 부르고 싶은 이 시는 왈칵, 쏟아지며 시작한다.

 

왈칵, 잠이 쏟아졌지/ 마흔하나/ 아파트 시린 난간

 

마흔한 살엔 잠이 온다.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다 아니고 잠이 온다. 그것도 쏟아진다. 별빛이 쏟아진다고 할 때, 우리 쪽에서 보면 별빛을 얻는 것이지만 우주 쪽에서 보면 별빛을 잃는 것이다. 물이 쏟아지듯이. 쏟아지고 나면 물방울만 남듯이. 그러니까 “쏟아지는 잠”은 되려 오지 않는 잠이다. 쏟아지고 남은 건 푸석한 선잠의 흔적뿐. 자려고 누워 봐도 잠 속에서 누가 자꾸 걸어다닌다. 마흔한 살은 불면의 밤을 보낸다.

 

너덜너덜한 잠, 파삭해진 잠, 헐벗은 잠, 얇디얇은 잠, 기반 없는 잠,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깊디깊은 잠 속으로 누군가 내 발목을 자꾸 끌어당겼지 너무 깊어 바닥을 알 수 없는 잠이 미치도록 쏟아졌지 (……) 누군가 또 내 잠 속을 걷는다

 

마흔하나, 스무 살과 예순 살의 한가운데서 인생의 코너링을 막 돌았을 나이. 계절로 치면 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이고 하루로 치면 낮의 끝 밤의 시작이다. 시인은 마흔하나를 이렇게 쓴다.

 

뒷목이

우리하다

뻐근하다

아린다

저민다

쑤신다

찌른다

 

시인은 1976에 태어났다. 올해 마흔하나이거나 마흔둘이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불면의 삶에 대한 이토록 핍진한 슬픔 뒤에 시인이 보냈을 울분의 밤낮이 없을 리 없다. 10년만의 시집. 10년 동안의 불면. 해서 우리고 뻐근하고 아리고 저미고 쑤시고 찌르는 건 이 시집이다. 『혜성의 냄새』가, 우리하다 뻐근하다 아린다 저민다 쑤신다 찌른다. 왈칵, 시가 쏟아진다.

 

 

민음사 편집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