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량 줄인 거

 

나는 누구인가, 또 여긴 어디인가? 이따금 스스로 하게 되는 질문인데, 사르트르의 첫 번째 철학서 『자아의 초월성』의 주제도 이와 통한다. “자아란 무엇인가?”

『자아의 초월성』에서 ‘자아’의 원어 Ego는 ‘나’를 가리키는 말 중의 하나다. 예를 들어 나는 졸고, 나는 딴짓하고, 나는 재채기하고…… 있다. ‘이렇게 놀기만 하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아가 등장한다. 이런저런 나를 모아서 하나로 의식하면 ‘이제 일을 해야겠다’는 판단이 설 수도 있고, ‘침대로 직행하자’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판단에 따라 실제로 실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아를 어떻게 이해할까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와 같은 말이 흔히 들려온다. 나의 안, 머릿속이나 마음속이나 어딘가에 뭔가 진정한 나라는 게 있다는 생각이다. 사르트르는 바로 이러한 오래된 생각을 비판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자아는 ‘의식 안에’ 사는 거주자 같은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 ‘세계 안에’ 있다. 책을 읽는 나, 전차를 타는 나, 증오하는 나……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본질적인 자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그 모든 상태와 행위의 통일이 자아다. 그리고 이러한 통일이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는 의미, 다시 말해 나의 내면을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쓰이는 철학 개념이 ‘초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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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추천하는 극한의 자기계발서 듀오

 

서점에 가면 ‘자기계발’ 코너가 있다. 우리는 자신을 다잡으려고 자기계발서를 읽을 수 있고, 플라톤부터 비트겐슈타인까지 어떤 철학자든 자기계발을 위해 읽을 수도 있다. 사르트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나’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근거해서 효과 있는 행동을 하는 데 있다. 만약 『자아의 초월성』에서 시작되어 『존재의 무』까지 이어지는 사르트르의 문제의식이 정당하다면, 더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앞에 두고 내 안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점을 『자아의 초월성』이 출간된 무렵에 이미 파악한 것이 곧 시몬 드 보부아르였다.

“『자아의 초월성』은 우리 모두를 심리적인 것, 자아, 유아론으로부터 탈출하게 한다. 유아론을 철폐함으로써 우리는 관념론의 덫을 피했고, 사르트르는 자신의 주장이 가진 도덕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실천 역량을 역설했다.”1)

 

민음사 편집부 신새벽

 


 

 

1) 『자아의 초월성』 서문에 인용된 보부아르의 평. 자세한 주석과 함께 이 책의 프랑스어판(1965)을 편집하고 서문을 쓴 실비 르봉은 바로 보부아르의 양녀 실비 르봉 드 보부아르이다. 이 책의 사생활로 느껴지는 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