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동안의 행복 2권 표1 100일 동안의 행복 1권 표1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럭저럭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직장, 사랑하는 아내, 그 사랑의 결정체인 아이들을 두고 말기 암에 걸린 남자가 있다. 그런데 마음껏 슬퍼하거나 가족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도 없다. 병을 알기 전, 아내를 배반하고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국내에 「애프터 러브」로도 소개된 바 있는 이탈리아의 재기 넘치는 영화 감독이자 ‘신인 작가’ 대열에 낀 파우스토 브리치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상상했다. 이 남자, 도대체 죽기 전에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에게 애정을 구걸하는 대신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하고 싶었던 것을 펑펑 쓰다 죽어야 할까? 아니면 가족의 따가운 시선과 애정 없는 돌봄에 상처받으며, 차가운 병원 침대에 누워 굴욕적으로 마감해야 할까?

주인공 루치오는 진정으로 상처받은 아내 파올라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용서를 구하는 방법을 택한다. 물론 쉽지 않다. 암은 점점 온몸으로 전이되어 고통을 더해 가고, 아내는 최소한의 배려만 해 줄 뿐, 그의 불륜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아직 기억한 채다. 그는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면서 가족의 품으로 최선을 다해 되돌아가려 한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여러 가지를 계획하는 그의 모습은 먼 훗날 아이들에게 아빠에 대한 영원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내의 경우는 조금 더 복잡 미묘하다. 바람을 피운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상황이 아내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무거운 짐일 테니까.

루치오가 스위스로 떠나는 날이 되기 전까지(그는 스위스에 가서 조력 자살을 하기로 선택했다.) 최대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주변 친구, 지인 들과 감정을 정리하는 모습은 여러 군데에 등장하지만, 파올라와의 화해는 어쩐지 낌새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는 루치오가 오랜 고민 끝에 준비한 생일 선물인 『어린 왕자』 초판본을 도로 환불받게 해서 관계 회복을 거부한다. 그러나 루치오가 잘못했다. 파올라는 이미 그것을 갖고 있었으니까. 부부의 영원한 오해는 역시 풀리지 않는 것일까?

루치오가 조력 자살을 할 거라는 것을 알린 이후에 파올라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소설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분명할 테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남편과 아내에게 닥칠 수 있는 감정적 고통 그 자체를 그린 것이 아닐까.

『100일 동안의 행복』은 설탕이 가득 묻은 도넛 같다. 그런데, 다 먹고 나면 목이 콱 메어서 커피 한 잔이라도 들이켜야 할 것만 같다. 아메리카노가 아닌 에스프레소로. 삶엔 달콤함 뒤에 언제나 쓴맛이 찾아오니 말이다.

 

 

민음사 편집부 허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