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없음』 재난, 종말 그 이후……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디스토피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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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종말을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세상이 끝장나기 전에 종말의 징조로 아마 이런 재난이 닥칠 거야, 하고 경우의 수를 헤아려 본 적은요? 공룡은 빙하기가 도래해 멸종했다고 하는데 인간은 어떻게 멸종하게 될까, 한 번쯤 궁금해지잖아요.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을 수도 없이 재난이 닥쳐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삶을 더 잘 사는 일과 닿아 있듯, 세계의 죽음을 상상해 보는 일 역시 우리가 사는 세계를 돌아보게 하지요.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지금은 어떤가를 곰곰 생각해 보게 하는 종말소설을 소개합니다!


1. 『먼 북쪽』, 마르셀 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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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소개해 드릴 소설은 영국 작가 마르셀 서루의 장편소설 『먼 북쪽』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종말 이후의 황폐한 세계에서 홀로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모험담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근미래, 공간적 배경은 시베리아의 극북(極北)입니다. 온난화의 가속화로 인해 인간이 살 만한 곳은 극북 지역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죠. 인간이 누려 왔던 대도시 문명은 인간의 전쟁으로 모두 무너지고, 혹한과 굶주림에 인간성을 모조리 빼앗겨 버린 고독하고 절망적인 종말의 시대를 그려 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류의 마지막 모습은 체르노빌 거주 금지구역의 원시적 생활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데요! 소설로 형상화된 이 질문은 강렬한 설득력을 지닙니다. 소설가일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작가이기도 한 마르셀 서루는 실제로 체르노빌 근교의 취재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2. 『스테이션 일레븐』,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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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멸망한다면 그저 살아남는 것 외에, 인간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스테이션 일레븐』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게 되겠죠. 이미 디스토피아 같은 현실에서,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외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은 ‘조지아 독감’ 보균자를 실은 비행기 한 대가 미국에 착륙하며 종말을 알립니다. 빠르고 치명적인 이 전염병은 원자폭탄처럼 터져 인류의 99.9퍼센트를 휩쓸어 가고, 눈 깜빡할 사이에 우리가 살아가던 세계가 끝을 맞지요. 그로부터 20년 후, “생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라는 문장을 마차에 새긴 악단이 광활한 북미 대륙을 떠돌며 셰익스피어 희곡을 공연합니다. 소설은 황폐화된 땅에서 벌어지는 학살이나 아귀다툼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몰락한 세계에서 셰익스피어를 공연하는 일, 종말이 와도 지키고 싶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희망을 말하고 있죠. 예술은 인간다움을 증명할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 아닐까요?

3. 『만조의 바다 위에서』, 이창래

 만조의 바다 위에서_이창래

가상의 미래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소설 『만조의 바다 위에서』는 계급 사회, 정치, 돈, 생명 존중, 음식, 교육, 의료, 고용 안정, 고독 등의 문제를 다루며 현재 우리의 삶을 절묘하게 반영합니다. 소설 속, 사람들은 지역마다 높은 담을 세워 계급을 구분하고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주인공 판은 상위 계급 지역에 물고기를 납품하며 살던 17세 중국계 잠수부 소녀입니다. 어느 날 그녀의 남자 친구 레그가 이유도 모른 채 사라지고, 그의 아이를 임신한 판은 그를 찾아 정문 밖 세상으로 나갈 결심을 합니다. 예측 가능하고 보장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안정을 깨뜨리고 정문 밖으로 나가는 판의 행위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용기 있고 대담한 행위는 B-모어 지역에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사람들이 서서히 이 사회가 맞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자신들이 옳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환상적이고 기이한 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사회를 정신없이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4. 「허공의 아이들」(『개그맨』), 김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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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딛고 사는 땅이 허공으로 솟아오르며 맞게 되는 종말의 광경을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게다가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둘 희미해지다가 결국 사라져 버리게 되지요. 어쩐지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속 한 장면 같습니다. 이 종말 속에 10대 소년 소녀 단둘이 남겨졌습니다. 둘밖에 남지 않은 세상, 소년과 소녀는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고 자신들만 선택된 것인지, 자신들만 누락된 채 다른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진 것인지 고민합니다. 바로 김성중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개그맨』에 수록된 「허공의 아이들」인데요. 이 소설에 그려진 종말은 환상적입니다. 세계가 투명하게 사라져 가는 방식으로 찾아온 종말은 10대 소년 소녀가 느끼는 성장통과 맞물려 특유의 아스라한 분위기를 지닙니다. 서서히 죽어가는 세계에 남은 이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인 점도 의미심장한데요, 소설은 이렇듯 “사라지는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이 질문은 찢어지고 나뉘어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라지는 세계’에 살고 있을까? 우리는 정말 성장하고 있나? 하는 물음으로요.

5. 『날짜 없음』, 장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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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다룬 종말소설이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어떻게 살아남느냐’를 보여 주기 때문이겠죠. 주인공이 생존을 목적으로 긴 여정을 떠나거나 위험을 무릅쓴 모험담을 생생히 그려내는 소설들은 아찔하고 흥미진진해 ‘페이지터너’라고 곧잘 불리며, 소설 속 사건이 진행되는 시간도 빠르죠. 종말소설의 스펙트럼 한쪽에 시간을 내달리는 이런 소설들이 있다면, 정확히 그 반대편에 장은진의 『날짜 없음』이 자리합니다. 1년 내내 회색 눈이 그치지 않는 눈과 얼음의 도시. 장은진이 주목하는 이들은 재난을 피해 떠나지 않고 남은 이들, ‘하지 않을 것’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소설은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를 남김없이 사랑하려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추위와 공포를 무릅쓰고 도시를 탈출하면 더 나은 곳에 도착할지도 모른다거나 먼저 떠나보낸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보다, 지금 하고 있는 연애가 중요합니다. 이곳을 떠난다면 더 나은 곳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이 젊은 연인의 태도는 우리 세대 청년들이 미래에 대해 지니는 태도와 가치관에 대한 은유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떠셨나요? 정말로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죠! 종말이 닥치거나 종말 이후의 디스토피아에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하고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소설 속 상상의 디스토피아가 늘 ‘지금 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섬찟하게 놀라곤 합니다. 돌이킬 수 없이 병들어 버린 미래를 다루는 소설이 많은 것도 우리가 딛고 선 이곳이 병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현재가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고, 이미 고정된 세계를 의심 없이 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의 ‘최애’ 종말소설도 궁금해지네요! 어느 때보다 세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대, 종말소설들로 일상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민음사 편집부 김화진

장은진
출간일 2016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