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의 컬렉션을 선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작가의 세계가 뚜렷하고, 문학적 가치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민음사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밀란 쿤데라 등의 작가 전집 이후에 이탈로 칼비노 전집을 기획한 것 역시, 세계 문학 속에 꽤 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칼비노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조금이나마 칼비노를 만나고 싶어 하는 독자 분들을 위해, 열한 권의 작품을 어떤 식으로 읽으면 좋을지 간단한 독서의 가이드를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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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비노를 왜 환상 문학의 거장이라 하는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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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라면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로 이루어진 ‘우리의 선조들’ 3부작부터 시작해 보자. 『반쪼가리 자작』에서는 말 그대로 몸이 반쪽 나 한쪽은 선한 쪽만, 다른 한 쪽은 악한 쪽만 남게 된 자작의 이야기이다. 『나무 위의 남작』은 십 대 때 부모와 싸운 후 평생을 나무 위에서 살면서 모든 지식을 습득하게 된 남작의 이야기이며,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철제 기사복을 입고 전쟁터를 누비지만 실상은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사랑하게 된 여인의 이야기다. 세 작품 모두 중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낯선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되려 옛날 동화를 읽는 듯한 분위기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인데, 읽다가 탄성을 내지르는 포인트는 인간 존재와 사회에 대해 비현실적인 상황을 설정해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칼비노의 경계 없는 문학적 상상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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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설가는 과학에 젬병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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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세 작품이 재미있었다면, 이제 다음 단계, 『우주만화』에 도전할 차례다. 이 작품은 칼비노가 과학 서적을 읽고 떠오른 영감을 바탕으로 환상적 상상력을 더해 쓴 단편집이다. 경계 없는 상상력이 우주의 역사와 인류의 기원을 아우르는 거시적인 시각으로 발전되었으니, 읽는 동안 마치 우주 시간 여행을 하는 듯 온몸이 들썩들썩한다. 과학 상식이 약간은 필요하지만 크게 중요치는 않다. 『우주만화』를 읽고 칼비노의 팬이 되었다는 사람이 꽤 여럿 있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이 칼비노의 매력에 흠뻑 빠질 ‘한 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난이도    ✔✔✔

3. 칼비노의 인간적인 면모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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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책들을 다 읽었다면, 약간 상급 단계로 가 보자. 『마르코발도 혹은 도시의 사계절』(이하 『마르코발도』)과 『힘겨운 사랑』은 모두 연작 단편으로, 칼비노 문학이 전반기를 지나 후반으로 들어 성숙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마르코발도』는 가난한 도시의 노동자 가족이 이탈리아 대도시에서 살며 자연적인 삶을 꿈꾸는 내용이다. 각박한 도시 생활을 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읽으며 마음에 울림을 받을 것이다. 『힘겨운 사랑』에선 ‘사랑’이 테마로 된 다양한 삶의 순간을 포착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 혹은 너무나 사소하게 스쳐 지나가는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이야기로 풀어내는 칼비노의 매력이 물씬 풍긴다.

 

 

난이도    ✔✔✔✔

4. 하이퍼 소설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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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된 운명의 성』,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는 소설사적으로 실험성과 독창성이 돋보이는 소설로 평가된다. 전통 소설들의 뻔한 전개와 뻔한 소재가 지루했다면, 이 작품들은 당신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교차된 운명의 성』은 타로 카드 78장을 가지고 이야기를 생산하고 또 다른 버전으로 재생산하는 소설이다. 말하자면 타로 카드 그림이 스토리라인의 중심축이 되며, 그 그림을 어떤 장면으로 상상하느냐에 따라 이야기 전개가 달라진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는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각기 다른 등장인물과 줄거리, 배경을 지닌, 열 명의 작가가 쓴 열 편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이탈로 칼비노의 새 소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를 읽을 참’인 남성 독자를 등장시키고, 그가 첫 장 이후 어떤 문제로 인쇄가 되지 않은 나머지 내용을 찾아다니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그와 함께(혹은 그 자신이 되어) 소설에서 소설로 넘나드는 여행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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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색의 길을 걷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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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일까? 철학 에세이일까?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 『팔로마르』는 그 경계선에 있는 소설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마르코 폴로는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그동안 자신이 여행하며 방문한 도시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도시는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고 시공간을 초월해 등장하는,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삶에 통찰을 제시해 주는 공간이다. 서사보다 큰 스케일로 거대한 유토피아를 그려 내는 칼비노의 능력이 돋보인다. 『팔로마르』는 연작 단편의 형식을 취한 형이상학적 탐험이다. 주인공 ‘팔로마르’는 사색적인 인물로, 인간 사회와 문화에 대한 고민, 더 나아가 존재의 의미와 행위, 그리고 우주에 대한 의문까지 전 방면에 걸쳐 사색하면서 소설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창조해 냈다. 두 작품 모두 형식상으로 실험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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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거장의 데뷔작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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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설가에겐 세상에 ‘작가’로 이름을 얻게 만든 데뷔작이 있다. 칼비노의 데뷔작은 스물세 살 때 쓴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이다. 아직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온전히 구축하기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자. 이 작품은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활동이라는 사실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했는데, 당시 문단을 휩쓸고 있던 네오리얼리즘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 낸 이 이야기에는 칼비노가 간직한 환상 동화적 분위기의 시초가 느껴진다.

 민음사 편집부 허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