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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의 일이다.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세계문학 전집을 갖고 싶었다. 모처럼 부탁을 드렸다. 며칠 뒤 아버지께서 들고 오신 책들. 그런데 이상했다. 세계문학 전집이 아니라, ‘현대 교양 에세이’라는 제목을 단 전집이었다.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사 달라는 아들에게 착각으로 말미암아 게임 「스파이크래프트」를 사다 준 아버지의 사연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도 ‘스타’와 ‘스파이’의 틈새는 ‘세계문학’과 ‘에세이’의 거리보다는 가깝지 않을까?

 

 

Spycraft_-_The_Great_Game_Coverart

 

「스파이크래프트」는 「스타크래프트」만큼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작품성은 훌륭한 게임이라고 한다. 

 

 

세계문학 전집이 어째서 에세이 전집으로 변했는지는 차마 묻지 못하고, 예의상 몇 권을 읽었다. 볼 만한 글도 있었고 따분한 글도 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애초에 바랐던 세계문학은 아니었어도 에세이라는 것은 제법 재미있었다.

『생활의 사상』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한 사람인데 글은 일흔다섯 편이다. 쓴 시기와 의도, 계기가 모두 다르다 보니 글들은 각자의 매력을 뽐낸다. 오래전 읽었던 에세이 전집의 한자리에 어울릴 만한 글도 있고, 신문을 구독하면서 부록으로 받았던 『이규태 코너』를 떠올리게 하는 글도 있다.

그래서 『생활의 사상』이라는 책은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저자가 생활 속에서 생각의 노동을 통해 얻은 사상을 표현한 글들’이라고 정의할 수는 있는데, 그렇게 끝내 버리면 뭔가 길기만 하고 아쉽다.

『생활의 사상』에서 몇 차례 인용되는 『일리아스』를 예로 들어 보자. 저자는 이 장대한 서사시에 담긴 여러 주제를 다채롭게 변주해서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리스와 트로이의 영웅들이 벌이는 잔혹한 싸움을 묘사하는 장면은 고전의 재미를 증명하는 데 쓰이고,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 선 헥토르의 모습은 구원과 연결되며, 허기와 잠이라는 참을 수 없는 욕구에 굴복하고 만 프리아모스 대왕에게서는 일상의 소중함이 발견된다. 이처럼 저자의 생각은 인문학과 예술, 사회, 삶이라는 주제의 경계를 넘나들며 에세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선다.

저자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철학자이자 시인, 평론가. 시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고, 평론의 예리함을 모르는 나는 에세이가 훨씬 독자 친화적이라고 주장해 본다. ‘에세이’라는 말의 어원에는 ‘시도해 보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에세이가 지닌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 방향을 찾고자 끊임없이 시도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으면서. 오랜만에 제대로 쓴 글을 읽어 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서동욱
출간일 2016년 10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