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젊은작가13_82년생 김지영_표1

 

 

 

1982년에 태어나 학생, 회사원을 거쳐 서른넷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일생을 마디마디 되짚어 보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한국 사회에 뿌리박힌 성차별의 실체를 보여 주는 페미니즘 소설이다. 관습화, 내면화된 성차별을 감내하며 살아 온 여성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심리 소설이자, 수많은 기사와 통계를 노출하는 ‘자료 소설’이며, 대표성 있는 사례들을 재현한 목소리 소설이다. 요컨대 『82년생 김지영』은 지금 우리 사회의 질문을 대신하는 바로 그 소설이다.

“김지영 씨는 1982년 4월 1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키 50센티미터, 몸무게 2.9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김지영 씨 출생 당시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위로 두 살 많은 언니가 있고, 5년 후 남동생이 태어났다. 방 두 개에 마루 겸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인 열 평 남짓 단독주택에서 할머니와 부모님, 삼 남매, 이렇게 여섯 식구가 살았다.” (23쪽)

왜 하필 82년생일까? 정부에서 한창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던 1980년대는 의학적 이유의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된 상태에서 성 감별과 여아 낙태가 공공연하던 시절이다. 1980년대 내내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 셋째 아 이상 출생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에 이른다. 한편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던 흑역사 이면에는 제도적 성차별이 없어지고 동등한 교육이 가능해져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대학 진학률을 보이기도 하는 성평등적 역사가 있다. 극과 극이 공존하는 시대에서 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엄마가 된 여성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세대의 여성들. 이들이 바로 ‘82년생 김지영’이다.

이 시대, 그러니까 우리 시대 젊은 여성들은 눈에 띄는 제도적 차별이 아니라 겉으론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살아왔다. 가랑비 같은 차별에 옷 젖는 줄도 모르고 지내던 지영 씨는 육아의 세계로 진입하면서 그제야 자신이 젖은 옷을 입고 빗속에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명의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오던 여성이 ‘전업맘’과 ‘취업맘’으로 구분되는 세계에 들어서면 그때 보이는 세상은 전에 살던 세상과 같지 않으니, 어떤 이는 그 경계를 두고 지옥문이라 말할 정도다. 지옥문에서 돌아보니 지나온 시절, 알게 모르게 내 옷을 적신 수많은 빗방울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소설은 헤아릴 수 없었던 그 빗방울에 대해 털어놓는다.

“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2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나았다. 세 살 많은 정대현 씨, 딸 정지원 양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한다. 정대현 씨는 IT 계열의 중견 기업에 다니고,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정대현 씨는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한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정지원 양은 돌이 막 지난여름부터 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 시간 동안 다닌다.”(9쪽)

『82년생 김지영』은 어린이집 다니는 딸을 둔 전업맘에 대한 이야기다. 육아를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지영 씨는 아기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다 커피를 마시던 중 자신을 ‘맘충이’라 부르며 조롱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때부터였을까. 지영 씨가 난데없는 말을 내뱉는가 하면 불쑥불쑥 딴사람이 된 듯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 조남주 작가가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와 일치한다. ‘전업맘’이 ‘맘충이’라는 말을 들으며 비하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그때 말이다. ‘어린이집 무상보육’ 제도에 따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전업맘들을 ‘젖도 안 뗀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고 카페에서 브런치 먹는’ 여성으로 조롱당하는 목소리를 우리는 함께 들었다. 이 엄마들이, 여성들이, 이렇게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뭘까? 이 한 줄의 질문에서 출발한 소설은 우리 시대 여성들의 삶을 티끌까지 끌어 모아 여성들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에 대한 가장 온화한 폭로문이다.

민음사 편집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