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 정치사상사를 통해 배우는 인문학적 상상력

68_게리온등위의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우리의 인생 여정의 중간에서,
나는 캄캄한 숲(una selva oscura)에 부닥쳤네.
올바른 길을 잃고서

―단테, 『신곡: 지옥편』에서

 

단테의 『신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대작을 집필하던 시점이 바로 단테 자신의 인생의 한중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는 성경의 『시편』 90편 10절을 따라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세 정도로 보았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인생 여정의 중간’은 1300년, 바로 그가 피렌체 정치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 때를 말한다.” 그리고 그 시절 단테는 정치적 절망감에 빠져 있었고, 그것을 ‘캄캄한 숲’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당시 피렌체 정치는 또다시 불거진 파벌싸움으로 혼란스러웠다. 1289년 교황파가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파를 누르고 권력을 차지한 후, 교황을 지지하는 흑파와 교황을 반대하는 백파로 다시 분열되어 극심한 긴장을 조성했던 것이다. 급기야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의 요청을 받은 샤를의 군대가 피렌체로 진격하고, (…) 1302년 1월 27일에 흑파는 백파에 속했던 단테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덮어씌워 엄청난 액수의 벌금, 2년 동안의 추방, 그리고 공직 자격을 영구적으로 박탈하는 칙령을 발표한다. (…) 인생의 정점에서 그는 조국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가 말한 ‘캄캄한 숲’은 바로 피렌체의 분열과 교황이 초래한 전쟁의 소용돌이였다.

―곽준혁, 『정치철학』에서

그런데 거장 단테는 왜 자신을 인도하는 선배 시인으로 호라티우스나 호메로스가 아닌 베르길리우스를 선택했을까? 기원전 70년에 태어나 “극심한 분열을 통해 수없이 반복되는 전쟁을 경험”했던 베르길리우스는 “이러한 내전을 종식시키고 제정 시대를 연 아우구스투스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이로써 베르길리우스는 “혼란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제국을 통해 보편적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이것은 “평화를 위해서는 신(神)이 세운 신성 로마제국에 모든 나라가 종속되어야 한다”고 본 단테의 열망과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에게 단순히 시적 영감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제국’을 통한 평화에 대한 전망도 공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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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준혁 교수의 신간 『정치철학』은 네이버 지식백과에 2년간 연재되었던 화제의 글이다. 어려운 정치사상사가 통합 삼사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플라톤으로부터 마르크스까지 중요한 정치철학자뿐 아니라, 페리클레스 같은 연설가, 이소크라테스 같은 수사학자, 리비우스 같은 역사학자, 그리고 소포클레스 같은 작가들을 통해 당시의 정치사상을 자연스럽고 쉽게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인터넷에 떠도는 겉핥기식 요약이 아니라 그리스로마 및 이탈리아 원문 자료까지 모두 확인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정치사상사이다.

저자 곽준혁 교수는 현재 쑨원이 세운 중산대학교 철학과에서 정치철학 담당 교수이다.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정치적으로도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지금 또 다른 ‘굴기(倔起)’에 몰두하고 있다. 밖으로는 해양굴기로 군사 강국화에 여념이 없는 한편 안으로는 인재 전쟁이 한창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100인 계획 프로그램(One Hundred talent program)’으로, 중국이 해외 석학 100명을 스카우트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서양인 학자들로 구성돼 있는데 곽 교수가 유일한 한국인이다. 2017년에는 곽 교수가 문헌학적 연구와 정치철학적 바탕 위에 이탈리아 원문에서 제대로 번역한 마키아벨리의 『군주』가 출간될 예정이다.

 

 양희정(편집부장)

곽준혁
출간일 2016년 7월 15일
곽준혁
출간일 2016년 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