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C04753

 

 

 

처음 《릿터》를 만난 날이 기억나네요. 금요일이었어요. 판권에 책임 편집으로 이름을 올린 둘이서 파주에 있는 제본소에서 날아올 《릿터》를 기다리며 되지도 않는 잡무 같은 것을 붙잡고 있었죠. 금요일이라서 차가 밀리나, 제작부 정 대리님은 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고, 배는 고프고…… 하여 회사 1층에 새로 생긴 타코집에 갔습니다. 요즘 날씨와 어울리는 멕시코 음식을 시켜 놓고 어쩐지 긴장되는 마음을 숨기려 여기가 꼭 칸쿤 같다는 둥, 칸쿤보다 더 더울 거라는 둥 쓸 데 없는 농담 같은 것을 붙잡고 있었죠. 금요일이라서 차가 밀리나, 정 대리님 배춧잎 같은 주차하는 소리 들리지 않고 우리는 다 큰 성인답지 않게 자꾸만 무언가를 흘렸어요. 긴장해서 턱이 떨렸나 봅니다. 그때 정 대리님이 인쇄된 《릿터》를 들고 회사에 도착했어요. 저는 냅킨을 뽑아 아래턱을 닦으면서 자리를 박찼습니다.

 

 

 

capture-20160801-150525 capture-20160801-150636

capture-20160801-150725 capture-20160809-105643

 

 

처음 인사드립니다. 《릿터》예요. 첫인상이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편집부에게 《릿터》는 우선 마냥 예뻤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안했습니다. 좋은 시작일까, 이것으로 된 것일까, 무언가 흘린 건 없을까, 이 모든 게 거대한 농담처럼 들리면 어떡하나, 우린 진지한데…….  별의별 걱정을 안은 채 책을 받았습니다. 책을 쓰다듬으니 코팅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경계가 느껴져 좋았습니다. 책을 펼치니 그동안 교정지와 PDF로 보아 온 페이지가 종이의 질감을 가진 생명체가 되어 감격스러웠습니다. 소중한 필자들이 보내 준 귀중한 글들이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되지도 않는 잡무는 썩 걷어치우고, 이제 막 세상에 도착한 《릿터》를 품에 안고 퇴근길에 올랐습니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니 칸쿤인지 서울인지 날씨가 제 마음처럼 뜨거웠습니다. 그날 서울의 바깥 온도는 섭씨 35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며칠은 여기저기에 “릿터”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책을 낸 편집자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일종의 애착증세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만, 제가 조금 심했나 봅니다. 여럿에게서 검색 좀 그만하라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새로운 친구를 누군가 나쁘게 느끼셨을까 봐, 이 친구가 누군가에게 섭섭한 마음을 드렸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검색해 모은 좋았던 말씀, 아쉬웠던 지적 모두 마음 속 엑셀 파일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차분히 정렬하고 소트하여 다음 호, 그 다음 호가 잘 나오도록 반영하겠습니다. 처음 《릿터》를 만난 날을 저는 영원히 기억할 것만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떨까요.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미래의 어느 날, 꾸준히 나오고 있을 《릿터》의 최근호 봉투를 뜯으면서 이 녀석을 처음 만난 날의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그날 무엇을 먹었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누구를 기다렸는지. 그리고 읽는 당신이 어땠었는지.

 

 

민음사 편집부 서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