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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chael Montfort

 

 

40여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시인선이 새로운 얼굴로 독자들을 만났다. 새 옷을 입었지만 원문을 음미할 수 있게 병기한 점과 역사에 남는 시 세계를 구축한 시인들을 한데 모았다는 점은 그대로이다. 리뉴얼 1차분의 여러 시인들 중 낯선 이름이 있는데 바로 찰스 부코스키다. 우리에게는 소설가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가 남긴 60여 권의 저서 중 절반 가량이 시집이다. 게다가 그는 현재까지도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현대 시인이기도 하다.

 

‘빈민가의 계관시인’이라 불리는 찰스 부코스키.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수사 중에 ‘잔인하리만치 솔직하다(Brutally honest).’는 평이 있다. 이보다 더 잘 부코스키를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어느 평론가가 말한 것과 같이 그는 “시인 자신의 진솔한 고백과 통속 소설의 허세를 적절하게 결합”시킬 줄 안다. 냉소적이고도 직설적인 목소리로, 그는 이런 식으로 노래한다.

 

가난하게 살면

이런 게 골치 아파.

서로의 소리를

공유해야 하니까.

―「참호전」에서

 

어찌 보면 마초이즘으로 점철된 그의 시에 자주 소재로 오르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들은 (조금 당황스럽게도) ‘고양이’와 ‘사랑’이다. 그가 고양이에 대해 쓴 시와 사랑에 대해 쓴 시만을 묶은 선집이 나와 있을 정도이다. 곧 출간될 부코스키 시선집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세계시인선16)』이나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의 대표적인 시(「나는 여성혐오자가 아니에요」, 「탈출」,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등)에서 엿볼 수 있듯 그는 관계의 영속성에 대해 꾸준히 노래했다. 물론 그것들에 알코올, 폭력이 종종 끼어든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 당한 기억을 통해 무가치한 고통을 작품에 담게 되었다는 그의 고백처럼 말이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아이를 갖고 싶다고, 결혼하고 싶다고

방금 전 내게 말을 꺼낸 참이었고,

바깥은 103도였다.

또 다른 아이, 또 다른 결혼이라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팍 상하기 시작했다.

작은 방에서

혼자 죽겠노라 이미 다짐까지 한 터인데

그녀는 내 계획을 뜯어고치려 하고 있었다.

―「화씨 103도」에서

 

술에 절어 관계에 대해, 삶의 폭력적인 면에 대해 노래하는 시인은 낭독도 걸출하게 한다. 유튜브 등에서 그가 맥주 한 잔을 걸치며 낭독한 「맥주병(Beerbottle)」이라는 시를 찾아 들을 수 있다. 걸걸한 목소리로 시를 읽다가 병따개로 또 다른 맥주병을 따는 소리를 들을 때 생각한다. ‘아, 이것이 바로 부코스키구나.’

 

 편집부 문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