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개그, 내심 좋아한다. 처음엔 야유하지만(거의 반사적이다.) 나도 몰래 되새김질하게 되는 것이 은근히 중독성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야유를 무릅쓰고 나도 한번 해 보고 싶다. 그것도 잘. 어쩐지 안쓰럽고 웬걸 사랑스러운 아재들. 내 주변엔 없었으면 좋겠지만 어딘가에는 있어 줬음 좋겠는 아재들. 소설에서도 당연히 아재 캐릭터들이 있다. 독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페이머스한 아재 네 분을 한자리에 모았다.

 

오베라는남자

 오베라는 남자(다산책방, 2015)

 

“내가 원하는 건 컴퓨터야! 빌어먹을 평범한 컴퓨터!”  지난해 최고의 인기작은 『오베라는 남자』가 아닐까. 이 ‘오베라는 남자’로 말할 것 같으면 주차도 못하는 사람들이 투표권은 가져도 되는지 의심하는 꼰대에다 컴퓨터로 일하고 커피는 에스프레소 기계로 내려먹는 주제에 건방이나 떨고 앉아 있는 수많은 서른한 살짜리(오베에 의하면 내가 바로 그런 서른한 살짜리다.)들을 경멸하는 59세. 아이패드를 부정하고 아우디 타는 인간은 무시당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어마어마한 아재다. 하지만 이 융통성 없고 막무가내인 북유럽 아재도 아내 앞에선 첫눈처럼 순해진다.

“인생이 이리 될 줄은 몰랐다. 열심히 일해서 모기지도 갚고 세금도 내고 의무도 다했다. 결혼도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자고, 서로 그렇게 동의하지 않았던가? 오베는 그랬다고 분명히 기억했다. 그녀가 먼저 죽는 쪽이 될 줄은 몰랐다. 그들이 얘기하던 건 그의 죽음이었다. 그게 빌어먹을 이치에 맞지 않은가 말이다. 응? 안 그런가?” 이런 인생, 아내와 함께하지 못하는 이 빌어먹을 인생을 끝내 버리려는 오베 앞에 눈치 없는 이웃들이 불쑥불쑥 찾아와 간섭해 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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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롤리타(민음사, 1999/절판)  (우)롤리타(문학동네, 2013)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님펫을 사랑한 죄로 인생이 꼬여 버린 아재. 타락한 중년의 아이콘 험버트를 빼고 아재를 얘기할 순 없겠지. 떠난 롤리타를 찾아다니는 와중에 자신의 사랑을 변호하는 험버트의 말들은 이 불온한 중년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미성숙이 왜 나를 매혹하는가, 그것은 순수하고 젊고 금지된 요정의 아름다움이 주는 명쾌함 때문이라기보다 많은 것이 약속되지만 거의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틈새를 무한한 완전성들이 메꾸어 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결코 가질 수 없는 분홍 잿빛의 위대함이여.” 아, 이 죄 많은 위대한 아재.

 

오늘의젊은작가10_자기개발의정석_표1

『자기 개발의 정석』(민음사, 2016)

 

“외로운 날은 야근을 했고, 말할 수 없이 허한 감정이 갑자기 몰려오는 날이면 회식을 했다. 그때마다 아랫것들은 도끼눈을 했지만, 상사들에겐 회사에 헌신하는 직원으로 사랑받았다.”마흔여섯의 기러기 아빠. 대기업 영업직. 외로운 날엔 야근하고 공허한 날엔 회식하는 부장이고, 부장이며, 부장이다. 그냥 이 부장이라 부르시라. 회사와 한몸이되어 자신을 착취하던 이 지친 부장 아재는 전립선염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쾌감, 말하자면 오르가슴을 느껴 버린 것이다. 아, 어쩌자고 그걸 느껴 버린 거야. 마흔여섯에 비로소 인생에 불이 켜진 것 같다고 고백하는 부장 아재의 생생한 표현은 생생해서 더 짠하다.

 

“이를테면 그날 이전까지 이 부장은 자신이 오르가슴을 경험해 보았으며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경험했던 사정감이란 고작해야 엄청나게 넓은 테마파크에 놀러가서 입구만 구경하고 온 격이었다. 쾌락이 무엇인지, 쾌락이 줄 수 있는 감각의 폭이 어느 정도인지 깨닫게 되자 이 부장은 모든 사람이 새로운 관점에서 보였다.”  감각의 세계를 알아 버린 부장 아재에게 드리우는 다크포스. 아재,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요.

 

아직최선을5권 아직최선을1권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세미콜론, 2012~2014)

 

“너도 42년간 살았으니 그 정도는 알거 아니냐?” 위기는 기회가 아니냐고 파이팅 넘치게 묻는 시즈오(42세)에게 위기는 위기라고 대답해 주는 냉정한 아버지. 인생 300년! 아직 258년 남았다고 해맑게 외치는 불멸의 일본 아재에게 마흔둘은 인생의 시작일 뿐이다. 만화가가 되겠다고 마흔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와 초라하고 굴욕적인 일상을 보내지만, 이 거부할 수 없는 외모의 아재는 나름대로 꿋꿋하게, 그림도 그리고 편집자도 찾아간다.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최선만 다하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우리 아재. 절망도 희망도 할 수 없는 중년이란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자기 속도로, 그러니까 300년을 기준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는 시즈오. 오ㅡ 나는 무려 269년이나 남았다.

 

오구로 시즈오: “미야타”

미야타 오사무: “응?”

오구로 시즈오: “우리 인생, 42년은 뭐였을까?”

미야타 오사무: “뭐였을까? 진짜….”

“………………..”

오구로 시즈오: “내가 만화를 그리고 네가 빵을 굽고, 그게 지금 우리의 인생이겠지.”

미야타 오사무: “그래”

오구로 시즈오: “읏차, 집에 가서 만화나 그릴까!”

 

                                                                민음사 편집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