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7시 퇴근길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즐기는 힐링타임이다. 또 평일 밤마다 12시면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 책을 읽거나 잠들기 전 마음의 평안을 찾는 시간이다. 바로 KBS라디오 「힐링 클래식」의 김강하다. 그렇게 만난 목소리를 책으로 읽을 수 있다. 음악의 거장들과 쟁쟁한 시인들과 함께 말이다.

 

21번

 

386세대는 대학가에 생긴 음악감상실에서 클래식을 향유했다. 데모를 하다 도망쳐 들어오는 공간이기도 하고 공부에 지쳐 피곤한 몸을 누이는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진지했다, 희소했기에 소중한 공간이었으므로.

지금은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풍월당과 각종 아카데미에 모여 앉아 멋진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일이 어렵지 않고, 예술의전당에도 비싸지 않은 연주 공연이 있고, 무엇보다도 비싼 CD를 사지 않아도 유튜브에서 양질의 연주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접촉면이 커졌는데도,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매력을 발견하는데도, 클래식음악은 여전히 지식인의 어려운 취향이거나 부르주아의 고상한 취미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Austria, Allegory on the musical creation of Franz Joseph Haydn (1732-1809), print, detail

5_미켈란젤로_태양과달_천지창조

 

결코 그렇지 않다. 클래식음악에는 예술가의 역사, 우리의 공감, 나의 삶이 있다. 클래식 세계로 들어가는 길에는 오감 가득한 다양한 문이 열려 있다. 당시 ‘트렌드세터’였던 모차르트는 송재학 시인의 시를 통해 만나고, 하이든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면서 만난다. 스트라빈스키는 피나 바우쉬의 현대무용으로 다시 만나고, 드뷔시는 호쿠사이의 판화로 경험하며, 거슈윈의 오페라는 재즈 「서머타임」으로 들을 수 있다.

 

튤립이 악보를 가진다면 모차르트이다.

리아스 식 해안 같은

내 사춘기는 그 꽃을 받았다

튤립은 등대처럼 직진하는 불을 켠다

둥근 불빛이 입을 지나 내 안에 들어왔다

몸 안의 긴 해안선에서 병이 시작되었다

사춘기는 그 외래종의 모가지를 꺾기도 했지만

내가 걷던 휘어진 길이

모차르트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

―송재학, 「튤립에게 물어보라」에서 

 UK - "The Rite of Spring" at Sadlers Wells in London

 

음악에 자신의 삶 전체를 담았기에 거장들은 그 영광뿐만 아니라 그 비극도 몸소 체험한다. 차이코프스키는 「예브게니 오네긴」을 작곡하고 있을 때 음악학교 여학생으로부터 끈질긴 러브레터를 받는다. 차이코프스키로 짤사랑 때문에 자살까지 생각하는 그녀를 연민하다 못해 결국 자신을 파렴치한 예브게니 오네긴과 같다고 생각하더니 그녀를 순수한 티치아나로 착각하기에 이른다. 예민한 예술가는 그렇게 창작에 몰두하다가 자기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7_힐링클래식(294-295)

 

하지만 이런 실수를 예술가들만 할까? 그들의 열정, 그들의 좌절, 그들의 기쁨과 우울, 이 모든 것이 바로 나 자신도 지금 겪고 있는 감정들이다. 하지만 예술가는 그걸 가장 아름다움 형태로 승화하였고, 나와 같은 삶이 바로 그 음악에 녹아 있기에 우리는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힐링 클래식』은 창조주가 주는 또 다른 감격을 전한다.

 

 

편집부 양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