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빈지노와 물감

IMG_2636

빈지노 무릎 위에 놓인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출처: 인스타그램)

 

 

빈지노가 2013년 12월 발표한 곡 「Dali, Van, Picasso(달리, 반, 피카소)」의 Van은 판 호흐(반 고흐)다. 여기서 잠깐, 지루할지도 모르는 사설1)을 늘어놓자면…… ‘판 호흐’라는 이름을 쓰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조소를 전공한 음악가에게, 동기 부여가 되는 기라성 같은 예술가 선배라면 한둘이 아니겠지만 적어도 “Salvador Dalí, Van Gogh같이, Picasso in my body.”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곡 가사로만 보자면, 핀센트 판 호흐가 첫째 눈에 띈다.

 

“반 고흐의 달이 보이는 밤, 나는 물감을 고르듯 단어를 골라.”

“아마 누군간 나를 미쳤다고 보겠지만, 난 그런 걸 상관 안 하는 성격이지. 물감 묻은 붓같이 끈적이는 여름밤, 내 목소린 곳곳에 퍼졌지.” -위의 곡 중에서

 

아마도 이 후배 음악가는 판 호흐의 물감에서 광기는 물론이고, 섬세한 감수성이나 집요한 완벽주의도 엿본 것 같다. 화가가 물감을 고르듯 작사가가 단어를 고른다. 선후관계를 제하고 보자면 작사가가 단어를 고르듯 물감을 판별하는 화가의 안목도 상정해 볼 법하다. 실제로 유화 물감에 애착을 넘어 집착을 보였던 판 호흐는, 동생 테오에게 받았던 지원금 대부분을 물감 구입에 투자했다. 남루한 옷에 물감은 예사로 묻혀 곧잘 무시당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즐겨 썼던 물감이 있다. 판 호흐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누런색이다. 그가 그렸던 달이나 해바라기는 당시엔 굉장히 화사하고 쨍한 노란색이었다고 하는데, 그때 쓰인 크롬옐로는 독성이 강한 납 성분으로 구성된 데다 변색이 심한 편이어서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안료다. 지금으로서는 원래 본색(本色)으로 복원하기는 힘들뿐더러, 유감스럽게도 이 순간도 원작의 노랑은 점차 갈색으로 어두워지고 있다고 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핀센트 판 호흐는 살아생전에 괄목할 만한 평가는 받지 못한 작가다. 그가 그린 그림의 비틀린 형상과 충격적인 색채를 “병든 정신의 산물”이라고 묘사한 비평가도 있었다. 동생이자 평생의 동반자였던 테오가 형에게 품었던 주요한 불만 역시 낭비되는 물감에 기인했다. 소위 잘나가는 화랑 지점장이었던 동생이 형의 “과도한 붓질(물감칠)”을 순화하고자 보낸 세월이 십수 년이나, 성과라곤 없었다.

 

핀센트 판 호흐는 “쇠가 뜨거울 때 쳐야 한다.”라며 폭풍우에도 아랑곳 않고 화구를 짊어진 채 모래 언덕을 올랐고, 대개 물감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캔버스를 공격하다시피 했으며, 마르기를 잠자코 기다리는 성격도 못 되어서 덜 마른 상태에서 덧칠하는 바람에 캔버스는 한바탕 진흙탕처럼 물감으로 뒤엉켰다. 다음은 그런 판 호흐(와 제물이 된 물감)를 옆에서 지켜 본 동료들(세 명의 폴)의 평가다.

 

“그는 소리를 지르고, 손짓을 하며, 여전히 마르지 않은 커다란 캔버스를 휘둘러 대고, 자신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감을 끼얹었다.” -폴 시냐크

“그는 화필을 집자마자 광인이 되었다. 캔버스란 유혹하듯 다뤄야 하는 법인데 판 호흐 그자는 캔버스를 폭행했다.” -폴외젠 밀리에

“물감 상자는 짜부라진 온갖 물감 튜브를 담기에 충분치 않았고, 튜브는 결코 마개가 닫혀 있는 적이 없었다.” -폴 고갱

 

이에 굴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이 대립을 즐기며, 판 호흐는 누가 색상이 지나치게 밝다고 하면 더욱 밝게 했고, 물감을 아끼라고 하면 아예 물감통을 들이부었다. 판 호흐는 시달리는 일상에서도 반란을 꾀하고, 역전을 꿈꾸는 사내였다!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려다 깡패들에게 습격당하여 값비싼 물감들이 보도에 짜부라졌을 때도, 그는 이 사건이 곧 아를에서 누리게 될 ‘명성’의 삐딱한 전주곡에 지나지 않는다며 웃어넘겼다. 이런 호쾌하달 만한 시절을 지나 그의 인생 말미,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발작의 폭풍에 삼켜졌을 때에도 그의 물감에 대한 애집(愛執)만은 변하지 아니하였다. 하루는 등유를 들이켜고 튜브 물감을 삼키기에 이르렀는데, 그런 그를 잡아내어 의사는 해독제를 투여하고 감금을 조치했다. 의사의 눈에는 판 호흐의 물감이 맹독(猛毒)으로 비친 셈이다. 판 호흐가 삼키고 토해 낸 이 염려스러운 독은 판 호흐 자신은 물론, 오늘날 우리들까지 매료하고 있으니,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끈질긴 여독(餘毒)임은 분명하다.

 

민음사 편집부 김미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번역 작업 중에 암스테르담 미술관과 (그다음으로 고흐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크뢸러뮐러 미술관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반 고흐라고는 아무도 안 하더군요. 판 호흐, 그것도 긁는 듯한 ㅎ 발음이라서 못 따라 하겠더라고요.”라는 게 『Van Gogh: THE LIFE』 번역을 맡아 주신 최준영 선생님이 지난봄 들려주신 말씀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발음을 검색해 보았는데, 과연 판 호흐다.(참조 링크: http://ko.forvo.com/search/van%20gogh/)

한편 유튜브 인기 영상 「반 고흐 발음법(How to Pronounce Van Gogh’s Name)」(참조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YLTQv8RH1TE)을 보면 Van Gogh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연신 불쾌한 버저를 듣는 퀴즈 쇼 패널들이 나온다. 이때 시도된 발음은 Van Goff(반 고프), Van Goth(반 고스), Van Go(반 고)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