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시편호텔타셀의돼지들소설을쓰자 

나는 세상 가장 두꺼운 시집 한 권을 들고 있다. 정정하겠다. <민음의 시> 시선의 1번 타자, 고은 시집 『전원시편』(306페이지) 다음으로 두꺼운 시집을 들고 있다. 다른 출판사 사정까진 정확히 모르겠으나 <민음의 시> 안에서는 ‘넘버 투’다. 좀 두껍다 싶었던 오은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180쪽, 김언 시집 『소설을 쓰자』가 196쪽이다. 그 언저리에서 시집의 두께가 갈음되어 가고 있을 때, 확실한 넘버 투가 나타났다. 나는 지금 황유원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를 들고 있다. 손목이 아프다. 이 시집의 페이지는 252쪽. 두께로는 지금까지 고은 시집에 가장 필적하는 두께다.

민음의시_세상의모든최대화_입체북 (1)

나는 세상 크나큰 시집 한 권을 보고 있다. 제목을 이루는 단어를 보자. 세상, 모든, 최대화…… 게임 끝이다. 시는 루마니아에서 시작한다. 북유럽을 돌아 하늘을 나는 새의 시선에 닿기도 한다. 그러다 웬걸, 비 맞는 운동장에 내려서더니 빵조각을 나르는 개미가 되어 버린다. 최대한으로 높게 최대한으로 낮게 그리고 최대한으로 크게 최대한으로 작게 시어를 위치시킨다. 이미 최대화 상태인 것을 앞에 두고 시의 길이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엄청나게 크거나 작은 것 앞에서 그 중심, 최대화의 기원을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 황유원의 최대화는 최대치에 1을 더하는 행태로 예의 그 뻔뻔한 작업을 거듭한다. 우리는 그저 최대화된 세계의 어디쯤을 마음껏 더듬어 보는 게 좋겠다.

나는 『세상의 모든 최대화』를 읽고 있다. 시집을 만들면서 오류로 보이는 표현을 여럿 발견했다. 그럴 때마다 시인은 의도된 오류임을 확인해 주었다. (사사로운 취향에 불과하지만) 나는 시작(詩作)의 우연성을 믿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시인의 의도를 신뢰하는 축에 속한다. 미심쩍은 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것은 이러이러한 점 때문에 그렇게 썼습니다.”라고 말해 주는 게 좋았다. 처음 시인을 만났을 때에는, ‘왜 어울리지 않는 수염을 굳이 기르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그것도 어떤 의도가 있으리라 믿게 되었다. 그의 시는 길지만 그냥 길지 않고, 어렵지만 아무렇게나 어려운 게 아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최대화』를 통해 꽤나 정밀한 세계를 만들어 냈다. 나는 그 세계의 첫 번째 탐험자였음이 자랑스럽다. 아직도 최대화되고 있는 세계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누군가의 첫 시집에 이렇게 빠져 버려도 되는 걸까. 혼자서는 억울하니까, 당신도 빠지길 바란다. 백주의 개미와 시베리아의 폭설 그사이에서.  

민음사 편집부 서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