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젊은작가08_보건교사안은영_입체북

정세랑 소설가는 편집자 출신이다. 발랄하고 세심하며 유능한 편집자로 기억한다. 그녀가 아직 민음사 편집부에서 일할 때, 나는 《세계의 문학》에 처음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다. 담당이랄 것까진 없지만, 이제 막 등단한 풋내기의 시를 다듬어 준 편집자가 정세랑 작가다. 시에서 농구 골대를 두고 ‘림’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것을 ‘링’으로 해야 하는지, ‘림’이라고 해야 하는지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어쩐지 이상민이나 우지원의 팬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즐거웠다. 내가 쓴 작품에 나오는 단어 하나를 두고서 누군가와 이렇게 장시간 대화를 나눈다는 것, 내 글에 이만큼의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아마도 정세랑 작가 특유의 친절함이 당시에도 한몫했겠지만. 

그리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대통령도 두 번이나 바뀌고 월드컵에서 16강도 올랐다가, 1무 2패로 떨어지기도 했다. 우리 사는 모습이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땐 지옥이나 숟가락이니 하는 말은 없었던 것 같은데…… 지난 이야기는 그만 해야지. 추억을 섬기는 일은 중독성이 있다. 피곤한 승객에게 자꾸만 말을 거는 택시기사님들도 어쩌면 지금의 나처럼 그것에 중독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정세랑 작가와 나는 어제 탄 택시를 오늘 또 탄 인연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때 림과 링 중에 하나를 고를 때 『보건교사 안은영』을 내가 만들 거라 누가 알았겠는가. 소설 속 안은영과 젤리피시 혜현이 함께 찾아간 타로카드 점쟁이 아줌마는 알았을까. 확실한 건 나와 정세랑 작가는 몰랐다는 사실. 

책을 만드는 동안 나는 ‘안은영’에게 푹 빠졌었다. ‘홍인표’ 같은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럭키와 혼란’ 같았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했고, ‘레이디버그 레이디’를 해적판으로 구해 들었던 X-Japan류의 일본 음악들을 기억해 냈다. 김강선처럼 조금은 일찍 떠나버린 많은 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소설이 끝나지 않길 바랐다. 소설이 끝난 지금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정세랑 작가는 현재 <창비 블로그>에서 소설 『피프티 피플』을 연재하고 있다. 주인공이 50명이라고 한다. 연재를 따라가기 전에 『보건교사 안은영』을 먼저 읽는다면, 작가 정세랑이 이어나갈 ‘모든 인물이 각자의 팔다리를 가지고 움직여 대는 세계’가 눈에 익을 것이다.  

‘림’과 ‘링’의 차이를 물었던 편집자 정세랑만큼 『보건교사 안은영』의 모든 단어를 붙들고 호기심을 가졌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친절했는지도 의문이다. 외레 작가의 따뜻한 유능함에 많이 기댄 것 같다. 그때 시어가 된 건 결국 ‘림’이었다. 반지인 ‘링’은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용의 코뚜레로 쓰인다. 그건 림이 아니라 링이 확실하다. 그래 링은 알겠는데, 용은 무슨 용이냐고? 보건교사가 왜 용을 만나냐고?

그건 작가의 따뜻한 유능함을 그대로 닮은 안은영이 책에서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소설의 다음 이야기가 지속되길, 기대한다. 

 

 민음사 편집부 서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