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하기에 고통스러운 책들이 있다.

이 책 『나치의 병사들』이 그런 경우다. 2차 대전 당시 포로로 잡힌 독일군 병사들이 자기들끼리 나눈 얘기를 도청해 기록해 둔 문서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 중 한 명인 죙케 나이첼 교수가 이 도청 문서 뭉치를 발견했다가 경악한 후, 사회심리학자인 하랄트 벨처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하면서 이 책이 태어났다. 나이첼 교수가 경악한 이유는 단순하다. 끔찍했기 때문이다.

 

브룬스(Bruns): 그러니까 구덩이마다 기관총 사수가 여섯 명씩 배치되었습니다. 구덩이는 대략 길이 24미터, 너비 3미터였지요. 구덩이 안의 사람들은 통조림의 고등어처럼 누웠어요. 머리를 가운데로 두고 말이죠. 그 위에는 기관총 사수 여섯 명이 있었고, 그 사람들 목덜미에다 총격을 가했죠. 제가 도착했을 때는 구덩이가 벌써 가득 찼어요. 그래서 아직 살아 있던 사람들을 시신 위에 눕히고 다시 총격을 가했죠. 구덩이 안의 공간을 잘 활용하려고 그 사람들을 켜켜이 잘 눕혀야 했어요. 그러나 그 전에 그들이 가진 것을 다 빼앗았죠. 여기 숲 변두리에 구덩이 세 개가 있었어요. 일요일이었죠. 사람들은 1.5킬로미터로 줄을 섰어요. 줄은 조금씩 움직였죠. 처형 대기자들이었습니다. 구덩이로 다가가면서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죠. 대충 이 정도 아래 지점에서 장신구와 짐 가방을 내놓아야 했지요. 그러면 사수들은 쓸모없는 물건은 그냥 무더기로 쌓아 놓고 괜찮은 물건은 짐 가방 안에 챙겼어요. 그걸로 헐벗은 우리 민중들에게 옷을 사 주겠다는 거였죠. 그다음에 조금 더 걸어와서 이제 옷을 벗었죠. 숲 앞 500미터에 이르면 발가벗어야 했어요. 속옷이나 팬티는 입도록 했고요. 여자와 아이들뿐이었죠. 두 살짜리도 있었습니다. 거기다 대고 그런 야비한 말을 하다니! 기관총 사수들은 그 일이 무리가 되어서 매시간 교대를 했죠. 차라리 그자들이 억지로 그런 짓을 하는 것이었다면! 아니었습니다. 그자들은 추잡한 말을 내뱉었죠. “자, 또 예쁜 유대인 계집이 온다.”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네요. 새빨간 내의를 입은 예쁜 소녀 말이에요. 인종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고요? 리가에서는 그녀들과 너도 나도 동침한 뒤에 총살해 버렸다니까요. 그래야 여자들이 어디 가서 그 얘기를 못 할 테니까요.

 

책은 이런 내용들로 가득하다. 트럭을 타고 가다가 여자들을 납치해 강간한 후 다시 던져 버린 일, 아이와 임신부를 이유 없이 총살한 일, 민간인 마을을 폭격한 무용담, 마을 사람들을 창고에 몰아 넣고 불태워 죽인 일……. 끝나지 않는 지옥도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대화를 하는 독일 병사들의 태도다. 그들은 이런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오히려 즐거워하면서 이야기할 때가 대부분이고 상대방 역시 그런 말들에 맞장구를 치면서 분위기를 살린다. 어쩌다 유대인 학살에 대해 ‘그건 잘못한 일이다’라는 의견이 나오지만, 그것 역시 인종 학살 자체를 탓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보기 쉬운 곳에서 죽였다’는 점을 탓하는 정도다. 독일군이 큰 죄를 짓고 있다고, 이런 방식엔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그간 갖고 있던 많은 선입견들이 산산히 깨져 나갔다. 특히 나치 치하 독일인들이 그런 만행을 저지르게 된 것은 어떤 거대한 악 때문이 아니라 ‘생각 없음’에서 비롯된 ‘악의 평범성’ 때문이라고 주장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같은 경우가 그랬다. 아렌트를 세계적인 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 문제작은, 이후 연구가 계속되면서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오판했음이 드러났다.1) 뿐만 아니라 그녀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 테제 역시 당시의 비극을 설명하는 틀로서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음이 지적되어 왔다.

아렌트 테제를 넘어서고자 한 이 일련의 ‘가해자 연구’ 중 대표적인 저서가 바로 『나치의 병사들』이다. 이 책은 평범한 독일 병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전쟁에 참여했는지, 대단한 반유대주의자도 아니고 나치 이데올로기의 화신도 아니었던 그들이 어떻게 이런 참극의 주연이 되어 가는지를 찬찬히, 고통스럽게 짚어 낸다. 나치하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회 프레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또 적극적으로 ‘나치의 병사들’이 되어 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인간에 대한 모든 기대와 희망이 증발해 버리는 것 같았다.

 

책의 부제를 “평범했던 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로 잡으면서도, 이 끔찍한 프레임에서 탈출한 사례를 샅샅이 찾았다. 본문 어디엔가 조금이라도 멀쩡한 소리를 하는 독일 병사가 있지 않을까, 기적 같은 사례들이 있지 않았을까 찾았지만 없었다, 그런 건. 다만 비교적 여유로운 시설에 갇혀 있던 고위급 장교의 경우 그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것 역시 치열한 정신 투쟁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기존 프레임을 헐겁게 하는 조건들이 갖춰진 경우의 사례였다. 저자들은 단언한다. “개인적 편차는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하찮은 의미만 가질 뿐”이라고.

고통스러운 진실에 눈뜨게 하는 책이었다.

 

민음사 편집부 신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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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동기 교수의 다음 글에 잘 나타나 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883.html. 홀로코스트 연구사의 맥락에서 이 책의 특징과 의의를 친절하게 알려 주신 이동기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연령 20세 이상 | 출간일 2015년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