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정재승의 소설 『눈먼 시계공』만 아실 독자들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같은 제목의 책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이 그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 하면 요새 독자들은 『만들어진 신(God Delusion)』(나는 원서 제목을 그대로 살려 『신은 망상이다!』라고 제목을 다는 게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지만, 극성스러운 일부 기독교인이 있는 한국 상황상 출판사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을 가장 먼저 떠올리시겠지만 이 『눈먼 시계공』이야말로 도킨스의 대표작이다.

 과학자로서는 물론 과학 저술가로, 더 나아가 현대를 대표하는 사상가인 리처드 도킨스의 수많은 작품 중 3대 작품을 꼽는다면 나는 단연코 『이기적 유전자』, 『눈먼 시계공』, 『확장된 표현형』을 꼽을 것이다. 이 세 권의 책은 모두 진화론이 일종의 가설에 불과하다거나 불완전한 그저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세간의 오해와 종교계(특히 기독교계)의 시기와 질투와 폄하를 명쾌하고 적확하게 논파하는 역할을 멋지게 수행한다.

『이기적 유전자』가 진화론이 분자 생물학과 수학이라는 반석 위에 건설된 튼튼한 학문 체계임을 보여 주고, 『확장된 표현형』이 생명 진화에서 문화의 발달까지 세상 만물을 설명할 수 있는 진화론의 힘과 가능성을 보여 준다면, 『눈먼 시계공』은 창조론자들과 반진화론자들에 맞서 진화론에 대한 비판과 반박이 얼마나 우스운 것에 불과한지, 신 같은 게 없어도 장엄한 이 우주와 다양성의 꽃을 피우는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할 수 있는지 우아하게 증명해 낸다.

 김탁환+정재승의 『눈먼 시계공』을 읽고 제목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겠거든,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으로 독서의 촉수를 옮겨 보시라. 그러면 탄소 생명체에서 규소 생명체로의 진화의 순간, 그 섬세한 지점을 그린 김탁환+정재승이 그린 세계의 감칠맛을 한 번 더 음미하실 수 있으리라.

사이언스 북스 편집부 노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