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은 착하다.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는 사전적 정의 그대로이다. 가히 문단 최고의 동안이라 할 만큼 앳되고 투명한 얼굴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 줄 때면, 이 세상은 천사들만 사는 천국이 따로 없다. 도무지 그녀에게 세상에 싫은 게 하나라도 있기는 한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여덟 번째 방』 속 주인공 영대의 말버릇인 “아, 예.”는 바로 그녀의 말버릇이기도 하며, 전화상에서도 진짜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그야말로 “표창장 속 문구로 빚어진”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손아랫사람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그녀인지라 나이 어린 편집자에게도 선배님이라 부르는 통에 난감하여 제발 ○○씨라 불러 달라고 통사정하였으나 ○○씨라 부를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를 보면 차라리 선배님 소리를 듣는 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친절한 미월 씨가 밤손님에게 편지를 쓴 사연인즉슨, 이러하다.

그녀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수십 군데의 방을 옮겨 다녔는데, 그중 잠금장치도 없는 방에서 하숙을 할 무렵이었다. 자물쇠를 달아 달라는 말에 주인아주머니는 이 집에선 여태 연필 한 자루 없어진 적 없다며 도리어 화를 냈다. 과연 아주머니 말씀대로 연필은 한 자루도 없어지지 않았지만, 어느 날부턴가 다름 아닌 책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만 지나면 그 책은 “외박하고 돌아와 시치미를 떼는 애인처럼 다소곳이” 제자리에 꽂혀 있었다. 한동안 돌아온 탕아를 바라보는 어미의 심정으로 책들의 가출과 귀가를 지켜보았다. 오히려 나중에는 밤손님의 독서 취향에 흥미마저 갖게 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골랐을 땐 동질감을 느꼈고, 자신이 싫어하는 책을 골랐을 때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책을 살 때 밤손님이 이 책을 좋아할지 어떨지를 고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특별히 아끼던, 이제는 절판되어 다시 구할 수도 없는, 로맹 롤랑의 『매혹된 영혼』이 사라지면서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그는 밤손님에게 편지를 썼다. 가장 아끼는 책이니, 부디 꼭 돌려 달라고. 며칠이 지나 그 책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그날 이후로 책들은 더 이상 가출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되돌아보면 섬뜩한 순간이었다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맑게 웃었다. 밤손님의 독서 취향까지 고려하는, 신고하기보다 편지를 쓰는, 그 따스한 마음이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드는 가슴 짠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제 글이 단 한 명의 독자라 할지라도,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해요.”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깊어지고 넓어지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안이 되는 글을 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수줍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이미 깊고 넓었다.

지면 관계상 친절한 미월 씨가 만난 귀신 얘기와 강도 얘기를 할 수 없는 게 아쉽지만, 4월 22일에 있을 ‘김미월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하여 직접 들어 보시라. 누구라도 그녀의 또 다른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민음사 편집부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