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잡잡한 피부에 동그란 눈, 자그마한 얼굴에 부스스한 단발 파마머리, 한겨울의 민소매 옷, 기다란 팔다리……. 이 여인을 아는가? 이름과 얼굴은 모를지라도 그녀의 팔다리만은 아마 익숙할지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고? 그럼 결정적인 힌트! 그녀는 지금까지 책에 관한 에세이집 네 권을 냈는데, 고전 독서 에세이를 묶어 낸 네 번째 책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을 제외하면 세 권의 책 표지에 모두 그녀가 등장한다. (단, 아쉽게도 팔다리 중심으로. 그녀는 이를 농담 삼아 자신을 사지 절단 전문 모델이라고 부르기를 즐긴다.) 이만하면 눈치챘을까? 그 주인공은 명실공히 소문난 독서광 정혜윤 PD다. 혹시 그동안 표지의 주인공 소녀(?)가 저자 자신인 줄 몰랐던 이들은 뒤늦게 놀랄지도 모르겠다.

독서 에세이 장르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고 평가받는 그녀의 본업은 사실 라디오 PD다. 하지만 이제는 PD보다는 독서가라고 불리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녀는 우연한 계기로(원고료로 책을 준다는 꼬임에 넘어갔다고 한다.) 한 웹진에서 독특한 감성의 독서 칼럼을 연재하며 주목을 받았고, 이후 동명의 독서 에세이집을 포함하여 벌써 네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여행과 도시에 대한 이야기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그녀는 책을 통해 말하고, 삶의 모든 단서를 책에서 얻는다. 하지만 책을 지독히도 사랑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사실상 무엇보다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다. 새벽 3시의 감수성이라고 부를 만한, 애틋하면서도 섬세한 그녀의 글은 조용히 우리 가슴속으로 스미듯 들어오는 매력이 있다.

그런데 2009년 가을경 모 온라인 서점 웹사이트에서는 유례없는 댓글 논쟁이 있었다. 그 주제가 무엇이었는고 하면 바로 ‘정혜윤은 과연 미인인가?’였다. 농담 같겠지만, 놀랍게도 사실이다! 평소에 여성 작가들을 두고 예쁘네 아니네를 따지는 풍토에 불만이 있었기에(심지어 여성 작가의 미모에 따라 도서 판매량이 달라진다는 믿지 못할 소리가 있다.) 처음엔 기가 막혔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논쟁이 우스운 한편 흥미롭게 느껴졌다. 사실, 정혜윤이야말로 독자들의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작가 아니었던가. 열광적으로 사랑하거나 차갑게 무관심하거나. 그런데 그녀의 미모에까지 취향이 이렇게 확연히 갈리다니. 나는 문득 그녀가 이미 어떤 아이콘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과 글과 행동과 말투 그리고 화장법, 옷 입는 스타일까지 어떤 취향이나 지향을 대변하는, 어떤 이는 반응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너무나 열렬히 반응하는, 그 누군가들을 위한 디바.

말이 나온 김에 그녀가 과연 미인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며 글을 줄이려 한다. 반경 30센티미터 거리에서 그녀와 머리를 맞대고 원고를 들여다보고, 전화벨이 울리면 그녀의 도로록 굴러가는 목소리에 반가워하고, 그녀의 살짝 깡총대는 듯한 걸음을 옆에서 슬쩍슬쩍 훔쳐보며 몇 달을 그녀와 작업해 온 나에게도 그에 답할 자격이 충분할 테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는 예쁘다. 듣는 이에게는 허무한 대답인지 몰라도, 나에게 정혜윤은 너무나 예쁜 사람이었다. 좋은 원고를 만들기 위해 어느 때고 편집자에게 자신의 영감을 전달하려 애쓰고, 세상과 좀 더 뜨겁게 소통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는 필자 정혜윤. 그저 책 욕심만, 독서 욕심만 많은 엄청난 욕심쟁이 (우후훗!) 독서가 정혜윤. 세상이 좀 더 아름답기를, 좀 더 좋은 곳이기를 바라며 새벽에도 잠 못 이루는 여자 정혜윤. 그녀는 예뻤다.

[민음사 편집부 박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