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남녀에게 최악의 상태는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다. 『한 줌의 먼지』의 두 주인공 토니와 브렌다 라스트는 전 세계 커플들 사이에서 1, 2위를 다툴 수 있을 정도로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아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토니는 고루하기 그지없는 헤턴 저택을 보존하는 데만 급급하다. 그런 남편을 못마땅해하는 브렌다는 화려한 런던 사교계를 동경하면서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철부지다. 아무런 목표의식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인 그들의 허무한 인생,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이 소설은 가라앉기 직전 타이타닉 호와 같았던 1930년대 영국 상류사회에 대한 통렬한 내부고발이다. 명실공히 영국은 19세기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팽창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였다. 제국의 발전에는 끝이 없는 듯 보였고, 자연스레 영국 귀족들은 흥청망청 즐기는 데만 집중할 뿐 미래에 대해 어떤 의욕적인 고민도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대공황은 위협적이었지만 ‘있는 자’들은 눈앞에 놓인 쾌락만 탐닉할 뿐 고통스러운 사회 현실을 돌아보지 않았다. 토니처럼 고딕 저택으로 대표되는 ‘전통’에 목을 매든, 브렌다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화려한 최신 유행을 따라가든, 실체를 무시하고 허상만 좇는 그들은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한량들이었다.
에벌린 워는 ‘한 줌의 먼지’보다 못한 인물들의 모습을 낱낱이 폭로하며 당시 현실을 풍자한다.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비극적이기까지 한 상황을 극단적으로 담담하게 묘사하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얼굴에 ‘썩소’가 떠오를 정도다. 나아가 풍요로운 문명을 즐기다 오히려 무기력증에 빠진 현대인들이 연상돼 씁쓸해지기까지 한다. 희망적인 암시 하나 없이 현실을 냉소적으로 조롱한 그가, 2차 세계대전과 전 세계 오지를 누비며 그 누구보다 역동적으로 살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결국 허무주의에서는 아무런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역설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여담으로 덧붙이자면 첫 결혼에서 쓴맛을 본 에벌린 워는 세상에서 가장 냉소적인 이혼 이야기인 이 소설을 첫 번째 부인과 헤어진 직후에 썼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남녀 관계에서는 낭만적인 요소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최악의 이별을 맛보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라스트 부부와 달리, 에벌린 워는 두 번째 아내 로라 허버트와 일곱 자녀를 낳고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민음사 편집부 남은경]

에벌린 워 | 옮김 안진환
출간일 2010년 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