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도 문득 낯선 표정이나 말투를 느낄 때가 있다. 늘 보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서는 물론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그런 낯섦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눈에 씌워 버린 콩깍지 때문에, 우리는 때론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잃기도 한다. 사랑은 현실을 일그러져 보이게 하는, 우리가 가장 자주,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현대 멕시코의 대표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아우라』에서 현실을 일그러지게 하면서도 절대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난감한 사랑의 일면을 말한다.
펠리페는 백 살도 넘어 보이는 쪼그라진 노파 콘수엘로의 집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듯 아름다운 눈을 가진 아우라를 만난다. 아우라, 초록빛 바다 같은 아우라. 펠리페는 그녀를 본 순간 사랑에 빠져 그 기괴하고 불쾌한 저택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 하는 짓은 좀 독특하다. 식탁에서는 기계적으로 숟가락질을 하고, 부엌에서는 풀린 눈동자로 양의 목을 딴다. 매너남 펠리페는 이 두려운 여자를 의심하기보단 사랑의 힘으로 상황을 돌파하려 한다. ‘아우라는 늙은 노파가 무서워서 이 집에서 나가지 못하는 거야. 그녀에게 자유를 되찾아 줘야 해.’
자신의 순정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가련한 펠리페, 침대 위에서 그를 기다리는 건 사랑이 가져다주는 희열일까, 눈을 떠도 깰 수 없는 악몽일까?
슬프고 어리석은 사랑 이야기. 하지만 그렇게 눈에 콩깍지가 씌어도 알아챌 수 없는 게 사랑이라니 펠리페의 사랑은 어쩌면 그저 보편적인 우리들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민음사 편집부 윤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