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의 CNA 상(남아프리카 최고의 문학상), 프리 에트랑제 페미나상, 예루살렘 상, 영연방 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은 물론, 한 사람에게 두 번 주지 않는다는 부커 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고, 마침내 2003년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J.M. 쿳시의 신작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매우 독특한, 실험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거의 모든 페이지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자 책을 읽기도 전에 걱정부터 앞선다. 이야기의 맥과 흐름이 끊기거나 부조화가 심한 것을 파격적인 형식으로 은근슬쩍 덮어 버리는 그렇고 그런 메타픽션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쿳시의 섬세한 손길은 그런 일리 있는 염려를 기우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각 페이지의 맨 윗부분은 쉰다섯 개의 주제에 관한 주인공 세뇨르 C의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저명한 작가인 세뇨르 C가 독일의 한 출판사로부터 ‘강력한 의견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집필할 것을 제안받고 쓰는 글들로 국가의 기원, 민주주의, 알카에다, 조지 부시, 토니 블레어, 테러리즘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다. 한편 중간 부분은 세뇨르 C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가 타이피스트로 고용한 젊고 매력적인 여성 안야를 대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풀어내면서 더불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심오한 사유가 담겨 있다. 그리고 안야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맨 아랫부분은 그녀가 세뇨르 C와 그의 에세이를 대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로 채워져 있다.

성별과 인종, 학력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공통점이 없는 세뇨르 C와 안야는 세뇨르 C의 에세이를 매개로 대화를 시작한다. 물론 여기에서 대화란 화목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자 몸부림이자 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탁월하고 예리하지만 완고하게 홀로 존재하는 듯 보였던 세뇨르 C의 에세이가 대화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독자는 이야기가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점점 부드러워지는 에세이를 만나게 된다. 세뇨르 C는 극적으로 변화되지는 않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인물 안야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안야 역시 세뇨르 C를 만나기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듯 보이던 세 영역이 이처럼 서로 소통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흥미로우면서도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이것은 쿳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바흐의 음악이 선사하는 대위법적 효과가 선사하는 감동에 비견할 수 있다. 음악에서 대위법이란 둘 이상의 독립된 선율이나 성부를 동시에 결합시켜 일종의 대화 상태를 구축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대화 상태가 탁월하게 구현된 소설인 것이다. 이 소설을 옮긴 전북대학교 왕은철 교수의 말처럼 “보통의 소설은 넘볼 수 없는 놀라운 대위법적 효과가 아닐 수 없다.”

[민음사 편집부 박향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