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개봉해 일본에서 25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호평받았다는 영화 「호타루」는 살아남은 특공대원의 이야기다. 히로히토 일왕이 사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의 시대는 갔다.”며 죽음을 택한 옛 동료로 인해 주인공은 잊고 있던 과거, 전쟁이 끝나기 직전 특공대에서의 기억을 회상해 나간다. 과연 이들에게 ‘천황’과 전쟁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제2차 세계 대전 후 일본의 재건 과정을 설명한 『패배를 껴안고』는 천황의 육성으로 항복 선언이 울려 퍼진 1945년 8월 15일, 시즈오카 현 시골 마을 풍경에서 시작된다. 이날 처음으로 대중 앞에 육성을 드러낸 천황은 결코 ‘항복’이나 ‘패배’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자신을 전쟁의 최대 희생자로 부각시킨다. 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바로 새로운 전쟁, 자신 스스로와 천황제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 나선 것이다. 이로써 일본인들은 서서히 자신들의 책임이 전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패한 것, 즉 이른바 ‘성전’을 제대로 치러 내지 못한 데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천황의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는 일본인들

이렇듯 『패배를 껴안고』가 보여 주는, 일본이 전쟁의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변모해 가는 모습, 미국의 정치적 의도와 맞물려 천황의 전쟁 책임은 흐지부지 사라지고 한국 전쟁이 일어나 군수 산업으로 다시금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는 일련의 과정은 왜 일본에서 끊임없이 역사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 생각하게 한다. 860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상세히 설명되는 그 당시 많은 논의들 중에서 일본 제국하에 고통을 겪었던 나라들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하다는 점은 한국 독자로서는 더욱 씁쓸하게 느껴진다.
영화 「호타루」가 주인공의 호연과 아름다운 영상,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천황은 여전히 자식들을 사지로 보낸 모진 ‘어버이’이고 죽은 이나 살아남은 이나,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모두 피해자일 뿐이다. 하여 주인공이 조선인 특공대원의 유품을 한국의 가족에게 전하며 흘리는 화해의 눈물에 감동보다 먼저 착잡함이 밀려드는 것이리라.

[민음사 편집부 신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