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리 마타이 뒤로

1940년 케냐 은예리에서 태어났다. 1964년 미국 캔자스의 마운트세인트 스콜라스티카 대학(현 베네딕틴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1966년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1년 고국 케냐의 나이로비 대학에서 생물학(수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동아프리카에서 여성이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마타이가 처음이다.

1976년부터 2년간 나이로비 대학의 첫 여성 교수로 강단에 섰고, 1977년 환경 단체 ‘그린벨트 운동(Greenbelt Movement)’을 창설해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 전역에 나무 심기 운동을 이끌면서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린벨트 운동이 지금까지 45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 심는 동안 무분별한 벌목으로 훼손됐던 밀림이 되살아났고 가난한 여성들은 땔감과 식수를 찾으러 수십 킬로미터를 걷는 대신 일자리와 교육의 기회, 그리고 삶의 희망을 얻었다. 마타이는 환경 운동뿐 아니라 인권과 민주화 운동에도 힘써, 케냐 전국여성위원회 위원, 유엔 사무총장 군축 자문 위원 등을 지냈다. 2002년 98퍼센트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케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동시에 케냐의 독재 정권도 39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린벨트 운동을 통해 아프리카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촉진한 공로로 200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첫 노벨상 수상이며, 정치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도 그녀가 처음이다. 그 밖에도 제2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바른생활상(1984)을 비롯해 세계여성상(1989), 골드먼 환경상(1991), 아프리카 상(1991), 영국 에든버러 메달(1993), 페트라 켈리 환경상(2004), 소피 상(2004) 등 국제적인 상을 수없이 받았다. 1995년에는 유엔환경계획 명예의 전당 500명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의해 유엔 평화 사절로 임명되기도 했다. 2011년 9월 25일 나이로비의 병원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세계 삼림 문제에 공헌한 여성에게 수여하는 왕가리 마타이 상이 2012년에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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