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불가코프 미하일 아파나시예비치 불가코프 뒤로

본명 미하일 아파나시예비치 불가코프. 1891년 키예프(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에서 대학 교수의 일곱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키예프 의과 대학을 졸업한 그는 제1차 세계대전과 우크라이나 내전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으며 잠시 적십자 의사로도 일했다. 내전이 끝난 후 모스크바로 이주해 잡지에 짧은 칼럼과 기사 등을 기고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전 러시아 작가 협회에 가입했고, 1926년 10월 첫 희곡 「트루빈 가족의 날들」을 성공적으로 상연한 데 이어 「조야의 아파트」도 같은 달에 상연했다. 그러나 연극의 내용이 반(反)소비에트적이라는 이유로 비평가들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며 스탈린도 “불가코프는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930년부터 1936년까지 중앙 노동 청년 극장에서 감독으로, 모스크바 예술 극장에서 감독 조수로 일하는 등 희곡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1936년 그가 감독한 작품이 상연 금지 조치를 받으면서 감독직을 사임하고 볼쇼이 극장에서 통역 겸 오페라 대본 작가로 일했다. 1939년에도 스탈린에 대한 희곡을 썼다가 출간과 상연을 모두 금지당했다. 이즈음 건강이 몹시 악화되었으며, 병상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최종본을 세 번째 아내인 옐레나 세르게예브나 실롭스카야에게 구술했다. 1940년 3월 10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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