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그레이브스 뒤로

영국의 시인, 소설가, 비평가이자 고전학자이다. 1895년 7월 24일 당시 잉글랜드의 특권 도시였던 윔블던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아일랜드 작가 앨프레드 그레이브스이고 어머니는 저명한 독일의 역사가 레오폴트 랑케의 조카인 아말리에 랑케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차터하우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1차 세계대전 때는 장교로 복무했다.

전쟁 기간에 세 권의 시집을 썼는데, 그의 서정시는 예이츠와 더불어 20세기 영국 시단에서 가장 훌륭한 시로 꼽히고 있다. 1920년대에는 전쟁의 후유증과 이혼으로 정신적 고통이 컸지만, 계급 사회와 전쟁에 대한 환멸을 생생하게 기록한 자서전 『모든 것과의 이별』(1929)이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시인 로라 라이딩을 만나 시즌(Seizin) 출판사를 운영하다가,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서 13년 동안 함께 지냈는데, 이때 그레이브스의 대표작들이 완성되었다.

『나, 클라우디우스』(1934)와 『클라우디우스, 신이 되다』(1934)는 각각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가 통치하던 초기 황제 시대와, 클라우디우스 자신이 황제가 되어 겪은 비극을 1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들려주고 있다. 재기 넘치고 흥미로운 구성으로 이 소설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미권 최고의 베스트셀러 역사소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다른 역사소설 『벨리사리우스 백작』(1938)도 로마의 전통을 마지막으로 계승한 비잔틴 제국의 장군 벨리사리우스의 삶을 그린 화제작이다.

한편 중동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던 시기에 『로렌스와 아랍』에서 중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가 하면, 『오랜 주말』에서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사를 평가했다. 그레이브스는 현대사의 문제를 예리하게 파악했으며 폭력으로 얼룩진 20세기를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한 소설가였던 것이다. 이 밖의 작품으로 신화를 폭넓게 연구하고 내놓은 『황금 양털』(1944), 시적 충동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보인 『하얀 여신』(1948) 등이 있으며, 그레이브스가 그리스 문화를 역동적으로 해석한 『그리스 신화』(1955)는 영어권 신화 시장을 장악했다.

1961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시를 가르쳤고, 1971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존스칼리지의 명예박사가 되었다. 1985년 12월 7일 13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아흔의 나이로 눈을 감은 그레이브스에 대해 《타임》은 “위대한 산문가이자 역사소설가이며, 존 던 이래 최고의 연애시인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라고 추모했다. 그레이브스가 작품을 집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마요르카 섬 언덕 위의 집은 현재 그레이브스를 기념하는 문학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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