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플로베르 뒤로

1821년 프랑스 북부 도시 루앙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고통과 질병, 죽음의 분위기를 체득하며 인간에 대해 깊은 관심을 품었다. 소년 시절 읽은 『돈키호테』에 매료되어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고 몇몇 단편 소설을 습작했다. 파리의 법과 대학에 등록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낙제했다. 간질로 추정되는 신경 발작을 계기로 학업을 그만두고 루앙으로 돌아와 요양하며 집필에 전념했다. 이때부터 십자가의 고행에 비유되는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감정 교육』의 첫 번째 원고와 『성 앙투안의 유혹』을 이즈음 썼다. 1856년에 『마담 보바리』를 완성해 《르뷔 드 파리》에 연재했다. 작품의 일부가 선정적이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작가와 잡지 책임자 그리고 인쇄업자가 기소당하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문학적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함께 얻으며 『살람보』, 『감정 교육』, 『순박한 마음』 등을 발표했다. 내용과 형식이 분리되지 않는 생명체처럼 완결된 작품을 꿈꾸다 1880년 5월 미완의 작품 『부바르와 페퀴셰』의 원고를 책상 위에 남긴 채 뇌내출혈로 사망했다. 카프카는 플로베르의 글쓰기를 소설가의 전범으로 칭송하고 문학의 수도승으로 섬겼으며, 플로베르의 풍요롭고도 실험적인 스타일은 이후 도래한 모든 문예 사조의 씨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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