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깁슨 뒤로

1948년 3월 17일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콘웨이에서 태어났다. 3주 동안 소형보트 제작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고, 중고품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크롬으로 도금한 재떨이나 램프 등을 구입하여 골동품상에 되파는 일을 한 적도 있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그가 이루어낸 유일한 성공은 SF 단편을 써서 23달러에 팔아 본 것뿐이었다. 당시에는 자기 자신이 글을 계속 써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못했다.

치기어린 소년기를 지나 전형적인 60년대말로 접어들자 그는 거리의 히피 문화와 윌리엄 버로우즈, 토마스 핀천의 소설에 몰두했다. 그것은 50년대의 SF가 로봇과 우주 여행에 대한 묘사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고, 그로 하여금 SF는 딱딱하고 기괴한 문학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무렵 윌리엄 깁슨은 펑크 락 밴드에서 파트타임 싱어로 일하는 한 SF작가를 만나게 되었고, 결국 SF에는 반드시 그가 담당해야 할 몫이 있음을 예감했다. 그는 “SF를 쓰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로터리 클럽에 속해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자기 집 식탁에 앉아 전통적인 SF 장르의 얼굴을 ‘사이버펑크’로 완전히 뒤바꿔 놓았던 것이다.

윌리엄 깁슨은 1981년에서 1988년 사이에 여섯 편의 단편을 발표했으며 ‘뉴로맨서’ 삼부작(1984년 <뉴로맨서>, 1986년 <카운트 제로>, 1988년 <모나리자 오버드라이브>)를 출판했다. 그것은 21세기의 암울하고 우울한 미래상을 제시했으며, 강철 같은 눈을 지닌 우주선 파일럿들 대신 컴퓨터 해커들과 좀도둑들, 하이테크와 언더그라운드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첫 장편 <뉴로맨서>가 사회 각계에 불러일으킨 반향은 센세이셔널했다. 많은 아티스트와 뮤지션들이 ‘사이버펑크’의 영향을 받았고, 그의 사이버 스페이스 개념으로부터 영감받은 과학자들은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장을 개발하게 되었다. 「아이작 아시모프 SF 매거진」의 편집인 가드너 도조이스는 깁슨을 “한 세기에 한두 명 나올까말까 한 재능의 소유자”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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