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영│똥

유재영2

지난여름, 그들 부부는 매일 밤 책을 읽었다. 한 명이 읽으면, 다른 한 명이 들었다. 듣는 사람이 잠들거나 읽는 사람이 지칠 때까지 부부의 낭독회는 이어졌다. 짧게는 십여 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이 걸렸다. 주로 단편 분량의 소설이 침대 위로 올라왔지만, 시를 읽거나 긴 소설의 특정 구절을 잘라 내어 읽기도 했다. 남자는 레이먼드 카버의 후기 작품이 자신들의 삶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남자의 실업에 대비했다. 8월에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을 읽은 건 여자였다. 꿈속에서 남자는 여자를 찾아 미(美) 남부 지역을 떠돌았다.

소식을 들은 날, 남자는 시를 골랐다. “꽃가루가 얼마나 모여야/ 꿀이 되는가 나는/ 생의 도감(圖鑑)같은/ 두툼한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꿀벌 사원」, 박후기,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창비, 2009)

부부도 그들의 부모처럼 두툼한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서로의 손목이나 어깨, 때로는 손가락 한 마디만큼 짧고 가는 것에 매달려 함께 흔들렸다. 지금 쓸 수 없다는 것을 두려워하진 않았다. 대신 계절을 같이한 사람들에게서 꽃을 키우는 법을 배웠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도감을 꺼냈지만 쓰는 날보단 잠드는 날이 많았다. 꿈을 꿨다. 그날의 기록이다. 남자는 꽃을 보았고 똥을 썼다.

  1. 제발좀
    2015.5.9 1:47 오후

    이 글에대한 평가글같은건 어디가야 찾아 볼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