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가상 수상 소감 – 전석순「철수 사용 설명서」

1983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명지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쓰고 싶은 소설과 쓸 수 있는 소설과 써야만 하는 소설이 단단하게 줄을 당기고 있었다. 어느 한쪽으로 좀 치우치는가 싶으면 다른 쪽이 좀 더 당겨졌고 순간 한쪽이 느슨해지기도 했다. 한쪽이 줄을 놓으면 균형은 어김없이 깨졌다. 모두 똑같은 힘으로 쥐었을 때 줄은 팽팽해졌다. 그 위엔 어떤 걸 올려놓아도 무너지지 않았다.

이사를 할 때마다 깨달은 것은 고장 났거나 쓸모없는 물건이 집 안에 꽤 많다는 것이었다. 이 작은 방 어디에 이렇게 많은 물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이것들 때문에 그동안 비좁게 살았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걸 모아 놓은 박스는 점점 커졌다. 그것은 쓰고 싶은 것이기도 했고 쓸 수 있는 것이기도 했고 결국 써야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최고의 제품이라고,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불량품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곁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고백해야겠다. 사실 나는 불량이거나 반품으로 들어온 것일 수도 있음을. 혹은 이미 고장이거나 쓸모없는 것일 수도 있음을. 어쩌면 이 고백이 그들에게는 내가 업그레이드되어 생긴 새로운 기능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떤 오작동이나 불량 요소도 그저 제품 고유의 특징이라고 따뜻하게 안아 준 그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들에게 이 소설이 싱싱한 안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슨 물건인지도 알 수 없고 아직 사용 설명서도 없는데 말을 걸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민음사에 감사드린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들린다. 튕겨 보니 소리가 제법 경쾌하다. 박스에서 덜어 낸 것을 거기에 조금씩 올려놓는다.

[세계의 문학 1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