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권 간행에 즈음하여 – 정명환 前 서울대 교수 축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권 간행에 즈음하여

정명환 前 서울대 교수

 존경하는 민음사 박맹호 회장님과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시고, 그 간행에 참여하신 신사 숙녀 여러분.

 지금의 이 자리는, 세계의 출판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역사적인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서 마련된 자리입니다. 1998년 8월에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첫째 권으로 간행한 이후 불과 10년 동안에 동서양의 명작을 200권이나 계속적으로 내놓은 일은, 출판사상 혁명적 사건이라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첫째 권이 나왔을 때 이 기도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종류의 작품이 포함될 것인가 하고 다소 의문 섞인 기대를 가졌던 분들도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은, 과거의 관례로 보아 40여 권, 많아야 60여 권이 한 질로 나올 것이며, 또 그 테두리 속에 들어갈 대부분의 작품은 종래의 정전에 의거한 것이 되리라고 예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정녕 파격적인 것이 되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에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왔던 작품들이 배제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가 향유하게 된 200권의 안에는, 괴테의 『파우스트』나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같이, 세계 문학상의 불후의 고전으로서 변함없이 수록되어야 하는 작품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전일수록 번역은 갱신되어 나가야 합니다. 작품에 담긴 의미는 시대와 연구자에 따라 부단히 다르게 해석되고, 또 도달언어인 모국어의 변천은 새로운 세대의 독자를 위한 새로운 번역을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음사는 바로 이 점에 세심하게 유의하면서 전집을 간행해 왔다는 것을 저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 제가 오늘 저녁을 기념하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전집이 세 가지 측면에서 열려 있는 총서라는 점입니다. 첫째로, 호화로운 장정으로 나온 과거의 세계문학전집이 일정수의 작품 속에 독자를 가두고, 그것들만 모두 접하면 세계문학에 통달하는 듯한 환상을 주도록 꾸며졌던 것과는 달리, 민음사의 전집은 그 읽기의 기쁨과 보람을 독자의 주체적인 결정에 일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독자 개개인이 그의 가변적인 지적 욕구와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신의 십자로에 전시되어 있는, 그러나 과대포장을 하지 않고 전시되어 있는 다양한 보물들입니다. 둘째로 이 전집은 유럽 중심주의와 좁은 장르의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갖게 된 200권의 책들은 가장 좋은 의미에서의 세계화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구미 지역 이외의 나라들의 작품을 다수 포함하고, 전에는 문학 전집에 넣기에 거북한 것으로 여겨졌던 글들을 수록함으로써,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삶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유도하도록 마련되어 있습니다. 셋째로 매우 융통성 있게 꾸며져 나오는 이 전집은 변화하는 상황이 촉발하는 새로운 지적 관심을 반영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속적으로 달라지고 예상 밖의 다양성을 보이는 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은, 우리가 등한시해 오거나 아예 몰랐던 과거의 작품들의 역사적, 실존적 가치를 돌연히 부상시키기도 하고, 새롭고 이질적인 작품의 탄생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 전집의 장래는 그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활짝 열려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첨가하겠습니다. 이 전집이 200권이라는 엄청난 수효를 기록하게 된 것은, 박맹호 회장님을 비롯한 민음사 스태프 여러분의 정열적인 사명감의 소산인 것은 물론이지만, 또한 속악한 상업주의와 대중문화의 창궐에도 불구하고, 진선미를 추구하려는 우리의 독자층이 여전히 두텁다는 증거이기도 해서 대단히 기쁩니다. 그리고 그런 바람직한 다수의 독자들을 발견하고 확보하고 존재케 한 것이 바로 이 전집의 크나큰 공적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저녁의 축연은 더욱 뜻이 깊다고 생각하며, 출판사상 희유한 이 기획이 연면히 이어져 나가기를 여러분과 함께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2009. 1. 19. 세종문화회관 세종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