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확신한다고? 그것도 어차피 다……

 

 

인생사 믿을 수 없다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이상하고 재미있는 사전의 한 대목을 소개해 드릴게요.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가 편찬한 『불온한 철학사전』 중에서 「확실한, 확실성」 항목입니다. 인간이 무엇이 확실하다고 할 때, 그리고 확신을 가질 때, 그 믿음은 어디에 기대고 있을까요? 볼테르는 어떤 종류의 확신에 대해 인생을 좀 살아 본 사람이라면 코웃음 치게 될 환상이라고 주장합니다. 

내게는 이런 확신이 있다. 내게는 친구들이 있다. 내 재산은 안전하다. 부모는 절대 날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난 정당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내 작품은 양호하니 좋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내게 빚진 사람들은 내게 갚을 것이다. 내 애인은 정절을 지킬 텐데, 그러겠다고 맹세했다. 장관이 승진시켜 줄 텐데, 그가 지나가면서 그렇게 약속했다. 인생을 좀 살아 본 사람이라면 자기 사전에서 몽땅 지워버릴 말들.


재판관들이 랑글라드, 르브룅, 칼라스, 시르뱅, 마르탱, 몽바유, 그 외 나중에 무죄로 드러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유죄판결을 내렸을 때 그들은 이 운 나쁜 사람들이 유죄임을 확신했음이 틀림없다. 그랬건만 그들의 판단은 착오였다.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하며 맹목적이 되어 버리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재사(才士)가 실수하는 경우와 바보가 결정 내리는 경우.  

랑글라드 사건의 경우, 판사들은 재사로서 실수했고 사람을 현혹하는 겉모습을 보고 판단력을 잃었다. 그들은 상충하는 겉모습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그들은 랑글라드가 저지르지 않았을 절도를 저질렀다고 스스로 확신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지성을 사용했다. 인간 정신의 그 불확실한 가련한 확신에 근거해, 신사 한 명이 통상적이고도 별난 심문에 부쳐지고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결국에는 도형수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아내는 다른 지하 감옥에 일곱 살짜리 딸과 함께 갇혔고, 그 딸은 훗날 자기 아버지를 도형장에, 어머니를 유배지로 보냈던 바로 그 고등법원 판사와 결혼했다.
판사들에게 확신이 없었다면 그런 판결을 내리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러한 판결이 나온 그때에도 이미 몇몇 사람들은 그 절도를 저지른 사람이 노상강도와 결탁한 가냐라는 이름의 신부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랑글라드의 무죄는 그가 죽고 나서야 인정받았다.
1심 법원에서 무고한 르브룅에게 차형을 선고했을 때에도 판사들은 마찬가지의 확신을 지녔고, 르브룅은 항고심 판결에 따라 무척 고통스럽게 사지가 부러져 목숨을 잃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마르탱 사건도 있다. 마르탱은 로렌 지방 바르 근처에 사는 착실한 농부였다. 금을 지닌 여행자를 엿보던 한 악한이 마르탱의 옷을 훔쳐 입고 노상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마르탱이 범인으로 몰린다. 그의 옷이 불리한 증거로 제시된다. 판사들은 상황 증거를 확실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 수감인의 과거 행동도, 그가 훌륭하게 부양해 온 많은 가족도, 그의 집에서 찾아 낸 돈이 얼마 안 된다는 사실도(이야말로 그가 살해당한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는 최고의 개연성일 텐데), 이러한 사실 중 그 어떤 것도 그를 구해 낼 수 없다. 하급법원 판사는 자기 엄정성을 장점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는 그 무고한 사람에게 차륜형을 선고한다. 게다가 비극적 숙명으로 최고형사재판소에 가서도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마르탱 노인은 최후의 숨을 거둘 때까지도 신을 걸고 자기 무죄를 주장하다가 산 채로 사지가 꺾이고 만다. 그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약소한 재산은 몰수당한다. 사지가 부러진 그의 몸뚱어리가 대로에 전시되자마자 살인과 절도를 저질렀던 진짜 살인범이 또 다른 범죄를 저질러 수감된다. 진범은 차륜형을 선고받고 수레바퀴에 매달리자, 마르탱에게 고통과 죽음을 안겨 준 그 범죄는 자기 혼자서 저지른 짓임을 고백한다.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몽바유는 아내와 모의하여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는데, 어머니의 사망 원인은 뇌졸중임이 명백했다. 아라스 법원은 몽바유를 차륜형에, 그의 아내는 화형에 처한다. 두 사람은 무죄를 인정받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몽바유가 차륜형을 당한 뒤다.
이 자리에서는 인간 조건에 대한 한탄이 절로 솟구치게 하는, 죽음을 초래한 그 무수한 사건들은 옆으로 밀쳐 두자. 다만 판사들이 그러한 판결을 내릴 때 가졌다고 생각되는 소위 확신에 대해서 한탄하자.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물증으로 혹은 심증으로 존재하는 순간부터 그 어떤 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맙소사! 구의 표면적이 그 중심을 지나는 단면의 네 배임을 확신하려 해도 입증이 필요한데, 끔찍스러운 형벌로 한 시민의 목숨을 빼앗는 데 어찌 그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만약 최고의 개연성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류의 불행이라면, 적어도 피의자의 나이, 지위, 태도, 그가 범죄를 저질러 얻었을 이득, 그를 파멸에 빠뜨려 그의 적들이 얻었을 이득을 염두에 둬야 한다. 판사들은 저마다 자문해 봐야 한다. 후대가, 유럽 전체가 나의 판결을 비난하지 않을까? 두 손을 무고한 사람의 피로 물들이고 평온하게 잘 수 있을까?

끔찍한 광경에서 벗어나, 곧바로 오류로 이끄는 확신의 또 다른 예들을 들어 보자.
 
“광신적이고 가련한 수도승이여, 쇠사슬은 왜 감고 있소? 그 보기 흉한 회초리에 커다란 쇠고리는 왜 끼웠소?”
“그건 언젠가 내가 제1천국에서 위대한 선지자 곁에 자리 잡으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오.”
“저런! 이보시오, 나와 함께 근처 아토스 산(그리스 북부에 있는 산. 현재 20여 개의 수도원이 있으며 그리스 정교회의 정신적 고향으로 간주된다.)에 가 봅시다. 거기 가면 자신들은 전부 다 제1천국으로 가게 되어 있고 당신은 좁은 다리 밑 구렁텅이로 떨어지리라고 확신하는 걸인 3000명을 보게 될 거요.”
“그만, 말라바르의 가련한 과부여! 장작더미 위에서 분신하면 또 다른 세계의 열락 속에서 남편을 만나게 될 거라고 설득하는 저 미치광이 말을 조금도 믿지 마오.”
“싫어요, 나는 분신하겠어요. 나는 내 남편과 함께 열락을 누리며 살게 될 거라고 확신해요. 브라만이 그렇게 말했어요.”
덜 끔찍하고 좀 더 그럴듯한 확신들을 예로 들어 보자.
“당신 친구 크리스토프는 몇 살이죠?”
“스물여덟이죠. 그 친구 결혼 계약서, 영세 증명서도 봤고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이랍니다. 스물여덟이고, 이건 확실해요. 확신합니다.”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해 그토록 확신하는 그 남자의 대답과 동일한 사실을 확인해 주는 또 다른 스무 명의 대답을 들은 직후 나는 크리스토프의 영세 증명서에 적힌 출생일이 무슨 이유에선지 희한한 잔꾀를 부려서 앞당겨진 것임을 알게 됐다. 내가 말을 걸었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도 그들은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해 여전히 확신을 품고 있다. 
 
만약 당신이 코페르니쿠스의 시대가 오기 전에 지구상 모든 이들에게 “해가 떴나요? 오늘 해가 졌나요?”라고 물었더라면, 그들 모두가 “그야 물론이죠, 확신하고말고.”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지만 사실 오류에 빠져 있었다.
 
마법, 점술, 귀신 들림은 오랫동안 세계 모든 나라 국민들이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었다. 얼마나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대단하다는 것들을 보고 확신했던가! 오늘날 그러한 확신은 살짝 허물어졌다.
 

갓 기하 공부를 시작한 어떤 젊은이가 날 보러 온다. 그 젊은이는 아직도 삼각형의 정의를 배우는 단계다. 내가 그에게 묻는다.
“삼각형의 세 각을 합하면 직각 두 개를 합한 것과 같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나요?”
그는 확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명제에 대한 명확한 개념조차도 없다고 대답한다. 내가 그에게 그걸 입증해 보인다. 그러자 그는 강하게 확신하게 되며, 앞으로 평생 그러할 것이다.
이거야말로 다른 확실성들과는 아주 다른 확실성이다. 다른 확실성들은 가능성이었을 뿐이고, 그 가능성들은 검토 결과 오류로 바뀌었다. 하지만 수학적 확실성은 불변이며 영원하다. 나는 존재하고, 나는 생각하고, 나는 고통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은 기하학의 진리만큼이나 확실한가? 그렇다. 내가 아무리 의심이 많더라도 그렇다고 인정한다. 왜냐고? 그러한 진리들은 하나의 사물이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원칙과 동일한 원칙으로 증명되기 때문이다. 나는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 없고, 느끼는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삼각형은 두 개의 직각을 합한 값인 180도를 갖는 동시에 갖지 않을 수는 없다.
따라서 나의 존재와 나의 감정에 대한 물리적 확실성과 수학적 확실성은 그 둘이 아무리 서로 다른 종류일지라도 같은 가치를 갖게 된다.
겉모습이나,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만장일치로 얘기하는 것들에 근거한 확실성에 대해서는 마찬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뭐라고! 당신은 내게, 베이징이 존재한다고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가? 당신 집에는 베이징산 피륙이 없는가? 다양한 국적에 다양한 의견을 지녔으며 서로 격렬하게 반박하는 글을 쓴 사람들이 모두 다 베이징에서 진리를 설파한다고 설쳐 대는데도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나로서는 베이징이라는 도시가 있다고 대답이야 하겠지만 그 도시가 존재한다는 데 내 목숨을 걸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래도 사람들이 내 목숨을 원한다면 삼각형 세 각 의 합은 두 직각의 합과 같다는 데 걸겠다.

『백과전서』에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 나온다. 삭스의 원수가 퐁트누아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파리 시민 전부가 떠벌리면 사람들이 그 사실을 확신하듯이, 삭스의 원수가 부활했다고 파리 시민 전체가 말하고 다니면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그 사실 을 자신하고 확신하기 마련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청컨대 이 논리가 얼마나 감탄을 자아내는지 보라.
 
“나는 심적으로 가능하다 싶은 것을 파리 전체가 내게 이야기하면 그 말을 믿는다. 그렇다면 심적으로 물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파리 전체가 내게 말한다면 믿어야 한다.” 
 
물론, 그 항목의 저자는 웃자고 한 일이었고, 이 항목의 마지막 부분에서 흥분하여 그 저자에 대한 반박 글을 쓰고 있는, 이 또 다른 저자 역시 웃자고 한 일이었다. 
 
오로지 질문들을 던질 목적으로 이 작은 사전을 시도했던 만큼, 우리야말로 확신을 품는 일과는 정말로 거리가 멀다.
 
 
─ 볼테르, 「확실한, 확실성(Certain, Certitude)」,
『불온한 철학사전』, 160~166쪽에서
  

“내게는 이런 확신이 있다. 내게는 친구들이 있다.” 두 문장으로 독자 기절시키기인가요.  날씨가 추워서인지 볼테르의 냉소가 오늘따라 차갑게 느껴져요. 17세기 데카르트가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다면 18세기 볼테르는 “나는 존재하고, 나는 생각하고, 나는 고통을 느낀다.”라고 말하네요. 고통을 초래한 그 무수한 사건들은 어쩔 수 없으니까 본인은 오로지 질문들을 던지겠다는 건 지금 눈으로 보면 퍽 답답한 태도 같은데, 당시 이 『철학사전』은 파리 법원에 의해 불태워지고 “파렴치하다”는 맹비난을 받았다니 참 고통스러운 역사예요…….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진실을 마주할 때, 입말로는 잘 알고 있었더라도 마치 길 가다 갑자기 뺨이라도 맞은 것처럼 놀랍고 얼얼하지 않나요? 나를 죽음에 이르는 고통의 바퀴에 묶어 놓을 수 있는 공인된 힘을 가진 이가 다만 자기 확신에 객관적 의문을 갖는 것 말고 막을 방법이 없다니 무섭게 느껴집니다. 한편 ‘내가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갖는 확실성은 수학적 확실성만큼이나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뺨을 맞거나, 바퀴에 묶이고도 이게 아픈 건지 안 아픈 건지 스스로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는 뜻은 아닐까요?

권력과 편견에 대항했던 볼테르의 사상은 18세기 계몽주의 핵심이자 프랑스의 톨레랑스 전통과 비판적 정신의 원류가 된다. 계몽주의란 이성을 신봉하는 사람을 위한 종교다. 『불온한 철학사전』은 무신론, 평등, 관용에서부터 데카르트, 뉴턴 등 당대 앞선 사상가들을 소개하는 개념사전이면서 또한 간통, 경박함, 우정 등 일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지적 에세이이기도 하다. 볼테르는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스스로 생각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역사학자 자크 바전은 “이 사전에는 ‘술술 읽히고 재미난’이라는 수식어를 제목에 덧붙여도 손색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일평생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강조한 볼테르가 투명하고도 재치 있는 언어로 전하는 ‘상식의 힘’은 우리에게 사유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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