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소설이 되어 가는 소설

 

 

참새-막대기-구토 ……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한편》 ‘환상’ 편과 함께하는 레터도 어언 열다섯 번째! 오늘은 폴란드 현대문학의 거장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코스모스』를 소개해 드려요. 저자의 페르소나이기도 한 주인공 ‘비톨트’가 일상을 떠나 폴란드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자코파네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본 하나의 이미지에서 소설이 시작되는데요. 곰브로비치가 “스스로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소설”이라고 밝힌 소설이에요.
이제 나는 당신에게 조금 더 괴상스러운 모험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땀, 푹스가 걷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나, 바짓가랑이, 구두굽, 모래, 우리는 발을 질질 끌며 걷고 있다, 걷고 또 걷는다, 토양, 바퀴 자국, 유리알처럼 빛나는 조약돌, 광채, 폭염의 웅웅거림, 이글대는 열기, 태양 아래 사방이 온통 시커멓다, 작은 집과 담장 들, 평야, 나무, 이 도로, 저 행렬, 어디서 왔는지, 무슨 목적인지, 할 말은 많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에, 아니 실은 가족 탓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게다가 나는 적어도 한 과목의 시험 정도는 뒤로 늦추어 제대로 치르고 싶었고, 변화 속에서 안도감을 맛보고 싶었으며, 어딘가 먼 곳에 가서 지내고도 싶었다. 
그래서 자코파네로 오게 되었고, 크루푸프키 거리를 지나다가 어떡하면 저렴하게 묵을 펜션을 찾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푹스를, 그의 빛바랜 옅은 금발과 불그레한 면상을, 튀어나온 눈과 무감각한 시선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몹시 기뻐했고, 나 또한 반가웠다, 잘 지냈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방을 찾고 있어, 나도 그래, 나한테 주소가 있어, 멀리 떨어진 시골구석이라 가격이 저렴하다고 그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걷게 되었다, 바짓가랑이, 모래 속으로 빠지는 구두 굽, 도로, 폭염, 바닥을 내려다본다, 토양과 모래, 조약돌이 반짝인다, 하나, 둘, 하나, 둘, 바짓가랑이, 구두 굽, 땀, 간밤에 기차에서 잠을 거의 못 자서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 그리고 계속되는 행군 또 행군. 그가 멈췄다. 
“우리 좀 쉴까?”
“아직 멀었어?”
“아냐, 그리 멀지 않아.”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도 지겹게 봤기에 딱히 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 소나무와 담장, 가문비나무와 작은 집 들, 잡초와 초원, 오솔길과 도랑, 벌판과 굴뚝…… 그리고…… 공기를 보았다…… 햇살을 받아 빛났지만, 시커먼 빛깔이었다, 나무의 검은빛, 대지의 회색빛, 땅바닥에 움터 있는 식물의 녹음(綠陰)조차도 모조리 검은빛이었다. 개가 짖기 시작했다, 그가 잡목 숲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가 좀 더 서늘하군.”
“어서 가자.”
“잠깐.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는 건 어때.”
 

 

 

그는 잡목 숲 안쪽, 뒤엉킨 개암나무와 가문비나무 가지가 차양처럼 드리워져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후미진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나 또한 잎사귀와 잔가지, 빛의 얼룩들, 덤불과 공터, 펼쳐짐과 기울어짐, 구부러짐과 휘어짐, 기울어짐과 모아짐이 뒤섞인 복잡한 혼돈 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돌진하다가, 물러서다가, 잠잠해졌다가, 시끄러워지는, 그러다 다시 갈라졌다가 펼쳐지기도 하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얼룩덜룩한 공간으로…… 길을 잃고서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로 나는 있는 그대로의 검은 토양을, 그 기운을 바닥에서부터 온몸으로 느꼈다. 그런데 분명치는 않았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뭔가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낯설고도 괴상한 물체가 불거져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나의 동행 또한 그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참새야.”
“아하!”

 

 

참새였다. 참새가 철사에 매달려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이고, 부리는 크게 벌린 채. 나뭇가지에 묶어 놓은 가느다란 철사에 매달린 상태였다. 놀라운 일이다. 목매달린 새. 목매달린 참새. 이 기이한 광경은 커다란 비명을 외치면서, 덤불을 헤치고 지나갔을 누군가의 손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누구일까? 누가, 무엇 때문에 매달았을까, 대체 무슨 이유로? …… 나의 생각은 백만 가지 조합이 뒤엉킨 무성한 과잉 속에서 혼돈에 빠져 허우적댔다, 흔들리는 기차 여행, 덜컹대는 소음이 유달리 크게 울려 퍼지던 밤, 불면의 시간, 공기, 태양, 이곳에서 푹스와의 행군, 그리고 야시아와 어머니, 편지로 인해 불거진 시끄러운 소동, 냉담해진 아버지와의 관계, 로만, 사무실에서 상사와 충돌을 거듭했다는 푹스의 고민(이 사건은 그가 직접 내게 이야기해 준 것이다.), 바퀴 자국, 먼지구름, 구두 굽, 바짓가랑이, 돌멩이, 잎사귀,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참새 앞에 내던져진 듯했다, 마치 무릎을 꿇은 거대한 군중의 무리처럼, 그리고 참새는, 이 기이한 광경은 바야흐로 군림하는 중이었다…… 이 외딴 구석에서 당당하게.
“과연 누가 참새를 매달았을까?”
“어린아이 짓이겠지.”
“아냐. 그러기엔 너무 높이 매달려 있는걸.” 
그렇게 우리 둘은 덤불 속에서 목매달린 참새와 함께 있었다…… 여기서 훌쩍 떠나 버린다면, 그건 어쩐지 균형을 깨는 일이거나 아니면 분별없는 무례한 행동인 듯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졸음이 밀려왔다.
“자, 그럼 이제 길을 떠나자!” 나는 그렇게 말했고,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잡목 숲 속에 참새를 홀로 남겨 둔 채로.

 

“방을 좀 보고 싶은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주인마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우리는 현관에서 기다렸다, 기차의 굉음, 여행, 전날에 벌어진 사고, 군중의 무리, 연기와 소음이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인공 폭포, 귓속이 숨 막힐 듯 윙윙거린다, 방금 전 그 여인에게서 내가 당혹감을 느낀 건, 밝은색 눈동자에 맘씨 좋은 하녀다운 표정을 띤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입술에 흉터가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술 한쪽 끝이 찢어져 있었는데, 고작 1밀리미터 정도에 불과한 그 조그마한 상처로 인해 윗입술 구석이 한쪽으로 치켜 올라가 있었고, 그 흉터는 거의 양서류의 껍질처럼 반들반들해져 무척 생소하게 보였다, 거의 자취를 감출 듯 미세하게 남아 반들거리는 그 부위는 마치 양서류의 냉기처럼, 개구리처럼 내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어둠의 통로처럼, 나를 갑자기 달아오르게 만들고, 흥분시키면서, 그녀를 두고 성적이고 음탕한 상상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녀의 목소리 또한 나를 적잖이 당황케 했는데, 그런 입술에서는 어떤 목소리를 기대해야 좋을지 미처 판단하기도 전에 중년의 나이에 뚱뚱한 몸집을 가진, 지극히 평범한 가정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집 안에서 또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님! 신사분들이 방을 구하러 왔어요!”

우리의 머리보다 조금 위쪽,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진 담벼락에는 우묵한 벽감(壁龕)이 생겨나 있었는데, 그 형상이 마치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세 개의 동굴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 그리고 그 동굴 가운데 하나에 뭔가가 매달려 있었다. 막대기였다. 길이 약 2센티미터가량. 새하얀 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막대기와 비슷한 길이의 그 실은 삐죽삐죽 튀어나온 벽돌에 걸려 있다.
그게 다였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근처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몸을 돌려서 유리창으로 인해 반짝이는 집을 바라보았다. 선선한 기운이 곧 다가올 저녁을 예고했다, 무더위로 인해 마비 상태였던 잎사귀와 풀 들이 해방이라도 된 듯 숨을 내쉬었다. 새하얗게 칠해 놓은 말뚝에 의지하여 나무들이 열을 지어 서 있고, 거기에 매달린 잎사귀들이 가늘게 몸을 떨었다.
우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푹스는 침대에 주저앉았다. “결국 화살표는 뭔가를 가리키는 거였어.”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보다는 덜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예를 들면 어떤 거 말야?”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목매달린 참새 — 매달아 놓은 막대기 — 담벼락에서 발견된 매달린 막대기는 잡목 숲의 매달림의 반복이다 — 그것은 참새의 강렬함을 갑작스럽게 배가시켜 주는 괴이한 결과였다.(우리가 아무리 참새에 관해 잊어버린 척을 해도 실은 그것이 우리의 뇌리에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 있었는지를 드러내 보였으므로.) 막대기와 참새, 막대기로 인해 더욱 강렬해진 참새! 그러므로 누군가가 참새와 연관 짓도록 하기 위해 화살표를 통해 우리를 막대기가 있는 곳으로 인도했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것은 오히려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어떤 목적으로? 장난으로? 농담으로? 누군가가 계략을 써서 우리를 조롱하고, 비웃고, 바보로 만들면서 즐기고 있는 걸까……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고, 그건 푹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카타시아.”
변화무쌍한 스핑크스의 얼굴 가운데 적어도 하나가 푹스에게서 모습을 드러냈다 — 그는 머리를 숙인 채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바닥으로 늘어뜨린 두 다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뭐라고?” 내가 물었다.
“망가진 부리처럼 생긴 입을 가진 사람이 또 누가 있겠어……”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교활하게 덧붙였다. “결국은 끼리끼리 어울려서 자신의,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것만 챙기는 법이지!” 그는 자신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확신에 차서 반복했다. “날 믿어도 좋아, 그저 끼리끼리 어울려서 자신의,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것만 챙기는 법이라고.”
사실이었다…… 입술과 막대기는 서로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입술과 참새도 뭔가 섬뜩하다는 점에서 연관을 지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카타시아가 그처럼 교묘하고 복잡한 계략을 꾸몄다는 건가?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뭔가 기묘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그 연관성은 마치 캄캄한 동굴처럼, 어둡지만, 나를 끌어당기고, 빨아들일 것만 같은 그런 동굴처럼 내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카타시아의 입술 뒤에서 레나의 입술이 벌어졌다, 다물어졌다 하면서 어렴풋이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심지어 뜨거운 충격마저 경험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잡목 숲 속 참새와 관련된 그 막대기는 일종의 첫 번째 (하지만 어찌나 희미하고, 불확실하던지) 신호였기 때문이다, 카타시아의 입술과 ‘관련되어진’ 레나의 입술, 그리고 그 입술과 ‘관련된’ 내 환영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는, 이 객관적인 세상에서 말이다 — 그것은 어렴풋하고, 몽환적인 유사성이다, 하지만 ‘관련되어짐’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면서 이 게임에 벌써 개입하고 있지 않은가.

이 이야기가 이후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이것이 이야기인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속적이면서……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한데 모였다가 뿔뿔이 흩어지는…… 이런 것을 과연 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현관에 나서자마자 입으로 뭔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사제를 본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지? 뭐란 말인가? 땅이 갈라진다든지 아니면 땅속에 있던 유충들이 지표면으로 기어 나오는 광경보다 더욱 놀라웠다. 농담이 아니다! 비밀을 알고 있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나 말고는 어느 누구도 레나의 입술과 관련된 그 비밀스러운 소동에 연루된 적이 없었다. 저 사제는 그러한 사실을 알 턱이 없다! 그건 온전히 내 것이었다! 대체 무슨 권리로 그는 자신의 입을 함부로 내 비밀에다 쑤셔 박는 것일까?! 
알고 보니 그가 구토 중이라는 게 금방 드러났다. 그는 토하고 있었다. 그의 구토는 추하고, 비루했지만, 정당성을 갖고 있었다. 
과음을 한 것이다.
흠! 별거 아니군!
그가 나를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계면쩍어하고 있었다, 그에게 어서 가서 푹 쉬라고 말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현관으로 나왔다.
야데츠카. 그녀가 내 옆을 지나치더니, 풀밭 속으로 몇 발자국 걸어갔다, 멈췄다, 손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달빛 아래서 나는 구토하는 그녀의 입술을 보았다. 그녀는 토하고 있었다.
그녀는 구토 중이었다. 내 눈에 비친 그녀의 입술은 구토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입술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 신부도 구토를 한 마당에, 그녀라고 구토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두말하면 잔소리. 좋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만약 신부가 구토를 했다면, 그녀는 구토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은, 일종의 한층 더 강렬해진 신부의 입술이었다…… 마치 막대기의 매달림이 참새의 매달림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 것처럼 — 마치 고양이의 매달림이 막대기의 매달림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 것처럼 — 마치 두드림이 격렬한 타격으로 이어진 것처럼 — 마치 내가 나의 베르그로 베르그를 더욱 강렬하게 만든 것처럼.
무엇 때문에 구토를 하는 그들의 입이 나를 엄습했을까? 저 입들은 내가 내 안에 은밀히 감추고 있는 입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저 미끄러질 듯한 파충류의 입은 대체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은 — 떠나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집이 아니라 풀밭이 있는 쪽으로, 모든 게 진절머리가 났다, 밤은 내부를 헤집고 유영하는 달빛에 의해 오염되었다, 죽어 버린 달빛, 나무의 꼭대기들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리와 행렬, 집적(集積), 속삭임, 회합과 유희가 도사리고 있었다 — 밤은 그야말로 몽상에 잠겨 있었다. 돌아가지 말자, 돌아가지 말자, 나는 기꺼이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바로 마차에 오른 뒤, 말을 채찍질해서 영원히 이곳을 떠나 버릴까…… 음, 그럴 수는 없다…… 근사한 밤. 어찌 됐건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꽤 그럴듯하게 즐기고 있는 중이다. 아름다운 밤. 하지만 이 밤을 연장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정말 아팠다. 아름다운 밤. 아프다, 아프다, 하지만 심각하진 않다. 집은 어느새 언덕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나는 시냇가 주변의 부드러운 목초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 나무는 어떤가, 저 나무는 무엇인가, 이 나무는 또 어떻고…….
 
 
─ 비톨트 곰브로비치, 최성은 옮김, 『코스모스』 중에서

세상에, 목 매달린 참새의 이미지가 막대기로 눈덩이 굴러가듯 부풀어서 이렇게 긴 소설이 될 줄은 몰랐어요. 목 매달린 참새와 막대기, 펜촉 같은 것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기어코 의미와 연관성을 찾아내고야 마는 주인공 ‘비톨트’. 그 사고 회로가 참 이상한데도 따라 읽게 돼요. 사소한 것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던 순간들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곰브로비치가 보여 주듯이, 실제와 가상 사이,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각자의 ‘막대기’를 잡고 나아가는 게 개인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한편》 환상 편을 만들면서 더욱 심화된 저의 말버릇…… 바로 말줄임표 쓰기인데요…. 이 소설에서 유감없이 등장하고 있네요……. 환상이란…… 말줄임표 없이는 말해질 수 없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생각들 이미지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거든요. “아주……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논리”지만 말이에요. 그동안 현실과 환상 사이에 있는 여러 글을 읽었지만 이 『코스모스』만큼 위태로운 화자는 처음이에요. “이 나무는 어떤가, 저 나무는 무엇인가, 이 나무는 어떻고…….” 거의 랩 아닌가요. 

전위적인 폴란드 작가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장편소설 『코스모스』는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라 칭송했던 곰브로비치가 남긴 네 편의 장편 소설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다. 곰브로비치 자신이 “스스로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소설”이라 정의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작가 자신과 이름이 같은 주인공이 마주하는 그로테스크한 상황과 사람들, 그로부터 생겨나는 기묘한 감정들을 묘사하면서 20세기 사상들을 반영하고 또 동시에 해체하는 철학 소설이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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