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멕시코로 이사한 뱀파이어

 

 

흡혈귀가 나타났다!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오늘은 환상문학의 대표 주자 뱀파이어가 왔어요. 멕시코 소설가 카를로스 푸엔테스 버전의 흡혈귀 이야기 『블라드』입니다. 주인공 이브 나바로는 변호사로 일하는 평범한 남자로, 사랑스러운 아내 아순시온와 귀여운 딸 마그달레나와 살고 있어요. 어느 날 그에게 이상한 의뢰가 들어옵니다. 직장 상사인 엘로이 수리나가가 ‘친구’를 위해 ‘창문 없는 집’을 구해 달라고 하는데요. 평소 직원의 사생활에는 관심이 없는 그가 부인을 언급한 것부터, 평소와 달리 자신 없어 보이는 태도까지 모든 게 이상합니다. 

블라드 백작은 귀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집시나 배우, 예술가와 더 가까운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온통 검은색이었다. 스웨터인지 풀오버인지 저지인지 아무튼 목이 긴 윗도리에,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모카신에, 양말은 신지 않았다. 그의 몸 전체와 마찬가지로 극도로 야윈 발목. 하지만 머리는 컸다. 신기하게도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머리, 마치 매 한 마리가 까마귀로 위장한 듯한, 억지로 꾸며 낸 온화한 표정 밑에 또 다른 얼굴이, 블라드 백작이 도저히 감추지 못한 표정이 엿보였다.
솔직히 말해 우스꽝스러운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 적갈색 가발이 한쪽으로 자꾸 기울었고 그때마다 백작은 가발을 매만져야 했다. 우리 멕시코 사람들이 ‘소나기 콧수염’이라고 부르는 콧수염, 축 늘어지고 촌스럽고 볼품없는, 윗입술에 붙인 게 분명한 농부 콧수염이 내 고객의 입을 감추어 우리 멕시코 사람들의 입에 쉽게 드러나는 기쁨, 분노, 야유, 애정 등의 감정 표현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콧수염이 부분적인 위장술이라면 짙은 색 선글라스는 완벽한 가면이었다. 선글라스는 그의 눈을 완전히 가려 빛이 들어갈 틈을 완전히 차단했고, 눈두덩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파고들어 작디작은, 어린 아이 귀 같고 흉터투성이인 블라드 백작의 귀 언저리에 빈틈 없이 박혀 있었다. 아마도 성형수술을 여러 번 받은 듯했다.
 
백작의 손은 굉장했다. 그는 우아하지만 어색하게 손을 움직였다. 느닷없이 주먹을 꼭 쥐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 이상한 손톱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가 이 집에서 추방한 창문들처럼 투명하고 기다란 유리 같은 손톱.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굵고 남성미 넘치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듯 말했다. 
 
나는 계속 말씀하시라는 뜻으로 머리를 숙였다. 
 
“마실 걸 좀 내올까요?” 그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포도주라면 조금…… 함께 드시겠다면, 부탁합니다.”
 
“나는 절대로 마시지 않습니다……포도주는.” 백작은 연극배우처럼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검은색 오토만 가죽 소파에 앉아 있던 백작이 느닷없이 나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조상들이 살았던 집이 그립지 않습니까?”
 
“저는 조상들의 집에 대해 잘 모릅니다. 농장들은 사파티스타들이 불태웠습니다. 지금은 고급 호텔로 변했지요. 스페인에서는 ‘파라도르’라고 합니다만……”
 
백작은 마치 나를 무시하는 듯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먼저 얘기하고 싶은 건, 나는 조상들의 집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지역은 빈곤해지고 말았어요. 전쟁이 너무 많이 벌어졌어요. 그곳에서는 살아남을 방도가 없어요…….수리나가가 당신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나바로. 당신은 유서 깊은 명문가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슬프지 않습니까? 오래 살아남아 전통을 수호할 운명을 타고난 명문가들 말입니다.”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려, 아닙니다.”
 

 

백작은 내 말을 듣지 못한 듯 말을 이었다. “제정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소위 현대적 삶이라는 것에 너무나 쉽게 적응하지요. 삶이라니요, 나바로!” 이토록 짧은 흐름이,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이 짧은 거리가 삶이란 말입니까?”
나는 백작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고 싶었다. “백작님께서는 제게 잃어버린 봉건주의에 대한 막연한 향수를 일깨워 주시는군요.”
 
백작은 머리를 갸웃하는 바람에 가발을 매만져야 했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나 우리를 덮친단 말입니까? 그 슬픔들에도 어떤 원인이나 근거가 있어야 해요. 알겠어요? 우리는 완전히 고갈된 민족이에요. 무수한 내전, 쓸모없이 뿌려진 수많은 피……이 얼마나 우울한 상황입니까? 모든 것에 부패의 씨앗이 있어요. 사물에는 쇠퇴라는 씨앗이. 사람에게는 죽음이라는 씨앗이.”
 
내 고객의 횡설수설이 대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백작과의 대화에 잡담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고,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담론은 내 전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성미가 괴팍한 블라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로 다가갔다. 그리고 쇼팽의 가장 애잔한 프렐류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를 대접하는 방식치고는 참으로 요상했다. 연주를 하느라 몸이 움직이면서 가발과 가짜 콧수염이 들썩거리는 모양이 다시 한번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건반을 두드리는 중에도 투명한 손톱이 깨지지 않는 그 손을 보면서 나는 감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편안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내게 열 살 짜리 딸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백작님.”
 
“서로 만나 친하게 지내면 좋겠군요. 미네아와 함께 놀게 따님을 데려오시지요.”
 
“미네아요?”
 
“내 딸아이 말이오, 나바로 씨. 보르고에게 연락 주세요.”
 
“보르고요?”
 
“내 하인 말이오.”
 
블라드가 손가락을 튕기자 탬버린과 캐스터네츠 소리가 났다. 유리 같은 손톱이 반짝였고, 몸이 불구인 작은 남자가 나타났다. 키 작은 곱사등이였지만 얼굴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마치 조각상을 보는 것 같았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이상적인 얼굴로 여겼던 형상, 첼리니가 조각한 페르세우스의 얼굴. 완벽한 대칭을 이룬 얼굴이 불구의 몸에 잔인하게 박혀 있었고, 여성스럽게 웨이브 진 치렁치렁한 꿀빛 머리카락이 머리와 몸을 하나로 묶어 주고 있었다. 보르고의 눈빛은 슬쓸해 보였고, 빈정거리는 듯했고, 천박해 보였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하인이 프랑스어로, 아주 고풍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나는 내 고객을 귀찮게 한 점을 이내 후회하고 어쩔 수 없이 무례하게 작별 인사를 서둘렀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된 것 같습니다. 다시 만날 필요는 없을 듯한데요. 그럼 편안하게 지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안녕히 계십시오.”
 

기원후 1448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룩셈부르크의 지기스문트에 의해 블라드 체페슈가 왈라키아 공국의 왕좌에 올랐다. 그는 오토만 제국의 변방, 도나우 강에서 멀지 않은 트르고비슈테로 수도를 옮기고 기독교 세계로부터 투르크족과의 전쟁을 위임받았다. 그러나 블라드는 투르크족의 손아귀로 떨어졌다. 블라드는 ‘오직 폭력만이 권력을 뒷받침하고 권력은 잔인함의 폭력을 요구한다.’는 술탄 무라드 2세의 가르침을 재빨리 습득했다. 투르크족의 손에서 달아난 블라드는 이중 속임수로 왈라키아의 왕좌를 되찾았다. 투르크족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도 그의 동맹 선언을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블라드는 오로지 블라드 자신과 잔인함의 폭력과 동맹을 맺었을 뿐이었다. 그는 트란실바니아 전 지역의 성채와 마을을 불살랐다. 언어를 배우러 찾아온 어린 학생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모두 불태워 죽이기도 했다. 어느 한 남자는 배꼽까지 땅에 파묻고 목을 자르도록 명령했다. 사람들을 돼지처럼 불에 굽기도 했고 새끼 양처럼 목을 치기도 했다. 트란실바니아의 요새 일곱 곳을 점령하여 그 주민들을 상추 잎인 양 칼로 다지도록 명령했다. 집시의 관습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교수형을 거부한 집시들에게는 그들 중 한 사람을 가마솥에 삶아 나머지가 그 살코기를 먹게 했다.
 
하지만 블라드는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다. 역사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명예와 업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는 자신에게 영원히 붙어 다닐 도구를 발견했다. 바로 ‘꼬챙이’였다.
 
블라드는 베네스티 마을을 점령한 후 모든 여자와 아이를 꼬챙이로 찌르라고 명령했다. 왈라키아의 특권 귀족과 작센 주의 대사 들도 꼬챙이로 찔렀으며, 브라쇼브의 성 바르톨로메오 교회를 감히 불태우지 못한 어느 지휘관도 꼬챙이로 찔러 죽였다. 뷔처란트에서는 상인들을 모두 꼬챙이로 찔러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차지했다. 코들레아 마을에서는 어린아이들의 목을 잘라 그 머리를 어머니들의 질 속에 쑤셔 넣고 그다음에 여자들을 꼬챙이에 꿰어 죽였다. 블라드는 꼬챙이에 꿰인 사람들이 꼬챙이 위에서 ‘개구리처럼’ 몸을 비비 꼬며 자지러지는 모습을 좋아했다. 당나귀로 하여금 어느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의 머리를 들이박게 하기도 했다.
 
블라드는 코, 귀, 성기, 팔, 다리를 자르는 것을 좋아했다. 불태우고, 삶고, 굽고, 가죽을 벗기고, 십자가에 못 박고, 산 채로 땅에 묻고……. 그는 희생자들의 피에 자신의 빵을 적셨다. 포로들의 다리에 소금을 바르고 짐승들을 풀어 놓아 포로들의 다리를 핥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정화했다.
 
그러나 꼬챙이 꿰기는 그의 특기일 뿐이었고 그는 다양한 고문을 즐겼다. 꼬챙이는 직장, 심장, 혹은 배꼽을 뚫을 수 있었다. 꼬챙이 황제 블라드의 치세 기간에 수많은 남자, 여자, 어린아이가 죽어 나갔지만 블라드의 권력에 대한 갈증은 결코 해소되지 않았다. 오직 그가 죽어야만 그 자신의 질긴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블라드는 자기 땅에 전해지는 전설에 강한 집착과 욕망을 갖고 귀를 기울였다.
 
이것이 바로 꼬챙이 황제 블라드의 타오르는 욕망이었다. 잔인한 정치적 권력을 잔인한 마법의 권력으로 해석했고, 시간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영원을 다스리고 싶어 했다. 한시적인 군주 블라드는 1457년경에 수많은 경쟁자들이 그의 권력에 도전하도록 빌미를 제공했다. 상인과 지역 귀족이 봉기했다. 분쟁에 빠진 왕가들과 그 왕가들의 협력자들. 합스부르크 왕가와 라디슬라우스 포스투무스 왕, 후녀디 가문의 헝가리 가계, 왈라키아 남쪽 국경선 지대의 오토만의 권력자들. 오토만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을 ‘그리스도 십자가의 적’이라고 천명했다. 기독교 왕들은 블라드를 신실하지 못한 신앙과 연결시켰다. 하지만 오토만의 권력자들은 블라드를 신성한 제국과 기독교 신앙과 연결시켰다.
마지막 전투 중에 영악한 동맹자인 바사라브 라이오타 도당에 붙잡힌 꼬챙이 황제 블라드는 발칸 반도 지역의 관습에 따라 트르나바 강변에 위치한 어느 군영에 산 채로 파묻히는 형에 처해졌다. 제아무리 잘났어도 도박을 하는 모든 권력자들이 당하는 운명이었다. 블라드는 그의 끝없는 범죄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인 블라드가 공동묘지로 향하는 달구지 위에 서서 지나갈 때 등을 돌렸다. 아무도 그의 마지막 눈길을 받아 주려 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이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단 한 사람만이 그에게 등을 돌리기를 거부했다. 블라드는 그 인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그 여자아이는 거만함과 순진함, 상냥함과 원한,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극히 인상적인 눈길로 꼬챙이 황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수, 황태자, 꼬챙이 황제 블라드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존재인 모로이, 노스페라투, 스트리고이, 바르콜라치, 뱀파이어를 꿈꾸며 산 채로 죽음을 향해 다가갔다. 트란실바니아와 몰도바, 프라하와 왈라키아, 카르파토스와 도나우 지방의 모든 주민들이 그에게 비밀스럽게 붙여 준 이름, 드라큘라…….
 
블라드는 어린 소녀의 파란 눈빛만 지닌 채 죽음으로 다가갔다. 장밋빛 옷을 입은 열 살 정도의 소녀, 블라드에게 등을 돌리지 않은 유일한 인간, 다른 모든 사람들이 드라큘라라는 그 저주받은 이름을 낮게 속삭일 때 유일하게 입을 다물고 있던 소녀……. 
 
내 친구 나바로, 이것이 바로 당신의 성실하고 충실한 하인이 (불완전하게나마) 알려 줄 수 있는 비밀입니다.
(서명) 엘로이 수리나가
 
 

“나바로 씨,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십니까?” 블라드 백작이 특유의 끈적끈적하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내를 만나 마그달레나를 데려가고 싶습니다. 설마 당신이 우리 가정을 파괴하지는 않겠지요.”
 
그가 카나리아를 아침 식사로 먹는 고양이처럼 미소 지었다. “나바로, 내가 상황을 설명해 주겠소.”
 
블라드가 관 하나를 대번에 열어젖혔다. 그곳에 내 아내 아순시온이 누워 있었다. 창백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검은색 옷을 입고 두 팔을 가슴 위에 포개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목을 살폈다. 시퍼렇게 멍든 찔린 자국이 두 개 있었다. 바깥 목정맥 근처에 자그마한 피의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억누르려 했지만 블라드가 선수를 쳤다. 그는 검투사의 힘으로, 거미와 같은 한쪽 손으로 내 멱살을 움켜쥐며 다른 손으로 내 입을 막아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지 못하게 했다. 
 
“저 여자를 잘 보고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시오. 나는 당신 부인에게는 흥미가 없소, 나바로. 당신 딸에게 관심이 있지. 그녀는 미네아의 이상적인 친구요. 두 아이는 마치 쌍둥이 같아요. 눈치 못 챘소? 왈라키아에 있는 내 무너진 성채에서 그 긴긴 밤마다 내 딸과 닮은 아이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진을 살펴보아야 했는지 당신은 모를 거요. 그런데 멕시코에서, 새로운 희생자가,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싶겠지, 희생자가 이천만 명이나 되는 도시에서 발견했단 말이오. 치안이 불안한 이 도시에서! 내가 런던에서 런던 경시청과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벌였는지 당신은 모를 거요. 게다가, 내가 전 세계에 걸쳐 여러 사람들과 오랜 우정을 쌓아 오긴 했지만, 이곳은 내 오랜 친구 수리나가가 사는 도시란 말이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렸다고도 할 수 있겠지……. 이천만의 맛있는 순대!”
블라드에게는 입맛을 다시는 못된 취미가 있었다.
 
“두 아이는 마치 쌍둥이 같아요, 눈치 못 챘소? 미네아는 내게 삶의 원천이 되는 아이였소. 내 선한 의도를 믿어 주시오, 나바로. 당신에게도 가문의 신비가 있어요. 이 아이는, 사실 말이지, 내 유일하고 진정한 가족이란 말이오.”
블라드가 감상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백작이 내 몸을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늦추었지만 나는 그 작자의 뻔뻔함에 현혹된 채 그대로 있었다.
“보시오, 나는 미네아와 함께 살면서 이해하게 되었소. 내가 이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지. 생각해 보시오. 나는 오백 년 전에 트르나바 강 상류의 시기쇼아라 성에서 내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오로지 정치적인 권력을 위해 싸우며 살았소. 왈라키아의 왕좌를 노리는 이복형제 알렉산드루와, 나중에 수녀가 된 내 아버지의 애인 카크투나와, 그녀의 아들이며 내 이복동생 — 나중에 자기 어머니처럼 수사가 된 — 에 맞서 내 아버지 블라드 드라쿨의 상속권을 지키기 위해 싸웠소. 그 모자는 신성한 교회를 배경으로 음모를 꾸몄지요. 나는 또한 배신자이자 타락한 인간인 내 동생 라두의 지원을 받아 내 왕국을 침입한 투르크족과 맞서 싸워야 했소. 라두는 술탄 메흐메트의 남자 하렘에서 미소년으로 유명했지요.
나 역시 투르크족에게 포로로 잡혔어요, 나바로. 나는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더욱더 세련된 잔인함을 배웠고, 복수를 다짐하며 풀려나와 실리스트라에서 티스마니아에 이르는 도나우 강 전역을 피로 물들였고, 발레니의 늪들을 시체로 가득 채웠고, 내 적들을 쇠꼬챙이로 눈을 멀게 하고 산 채로 파묻었고, 내 권력에 대항하는 모든 이들을 꼬챙이에 꿰어 죽였소. 입에, 직장에, 배꼽에 꼬챙이를 꿰었지요. 그래서 꼬챙이 황제 블라드라는 호칭을 얻게 된 거요.
교황 사절 가브리엘레 란고네는 십만 명의 남녀를 꼬챙이에 꿰어 죽였다는 죄목으로 나를 고소했고, 교황 역시 내게 트르나바 강변의 공동묘지에 있는 쇠로 된 묘비 밑 비밀스러운 수렁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살도록 선고했소. ‘신성한 땅은 너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죽이지는 않았지만 생매장하고 말았던 거요……. 그런 이유로 담보티바 강에서 로텐투름 거리에 이르는 지역에서 ‘죽었지만 살아 있는 자’라는 나에 대한 부당한 전설이 탄생한 거요.

 

불분명한 이유로 죽은 모든 사람들, 실종되거나 유괴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바로 나, 꼬챙이 황제 블라드, 살아 있는 시체, 아직 묻히지 않은 자에게 떠넘기게 된 거요. 그러나 나는 깊은 동굴 속에 산 채로 매장되어 있었소. 나무뿌리와 흙, 쥐 새끼와 동굴 천장에 매달린 박쥐, 뱀과 거미를 먹으면서 말이오. 산 채로 파묻혀, 나바로, 내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뒤집어쓰고, 내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며, 내가 아직 죽지 않고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힘을 합해 만든 종교 재판소의 추적을 받으면서 말이오.
하지만 내가 어디 있었는데? 트르나바 강변에 돌로 만든 손가락처럼, 대리석 말뚝처럼 솟아난 무덤들 사이에서 내 은신처를 어떻게 찾아낸단 말이오.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교황 사절의 명령에 따라 이름도 날짜도 없이 파묻힌, 세상에서 잊혔지만 세상을 망치는 종자로 의심받는 나를 말이오. 로마에서는 내가 강제로 유폐된 장소가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졌소. 사람들이 그 장소를 잊어버렸는지 잃어버렸는지 나는 모르오. 교황 사절은 비밀을 무덤으로 가지고 가 버렸소. 그래서 왈라키아의 주민들은 선조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였소.
벌거벗은 소녀가 말을 타고 그 지역의 모든 공동묘지를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말이 어느 한순간 멈춰 서는 자리, 바로 그곳에 블라드가 숨어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꼬챙이 황제 블라드의 가슴에 꼬챙이를 쑤셔 박을 수 있다…….
어느 날 밤 마침내 말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소. 나는 내 몸을 감싸안았소. 내가 두려움을 느낀 건 오직 그날 밤뿐이었소, 나바로. 말발굽 소리가 멀어졌소. 몇 시간 후, 벌거벗은 소녀가 내가 갇힌 곳으로 돌아와 교황이 강요한 그 불쾌한 감옥의 철문을 열었소.
‘미네아라고 해요.’ 그 아이가 말했소. ‘당신의 은신처 위에서 말이 멈추려 했을 때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이곳에 갇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제 나오세요. 당신을 구하기 위해 내가 왔어요. 당신은 흙을 먹고 사는 법을 배웠어요. 당신은 땅속에 묻혀 사는 법을 배웠어요. 당신은 당신의 모습을 영원히 보지 않고도 사는 법을 배웠어요. 당신을 잡기 위한 사냥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천진난만하게 굴었어요. 열 살짜리 여자아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나는 겉모습을 이용했지요. 하지만 나는 삼백 년 동안 밤에 싸돌아다녔어요.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위해 당신을 찾아온 거예요. 이 감옥에서 나와 우리에게 합류하세요. 영원한 삶을 약속할게요. 우리는 부대를 이루고 있어요. 당신은 동료를 만난 거예요. 당신이 지불할 대가는 매우 쌉니다.’
어린 미네아는 내게 달려들더니 내 목에 이를 박았소. 나는 내 동료를 만난 것이었소. 나는 창조자가 아니오, 나바로. 나 역시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거요. 이해할 수 있겠소……? 나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로 시간 속에서 살았었단 말이오.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죽을 운명이었소. 그런데 그 여자아이가 나를 시간에서 뽑아 내 영원한 삶으로 이끌었다오…….”
블라드가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내가 불쌍하지도 않소? 그 여자아이가 내 눈을 뽑아 빨아먹었단 말이오. 그 아이는 모든 것을 빨아먹지. 내 눈이 피에 대한 욕구 이외에 다른 것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동정심을 나타내지 못하도록, 밤이면…….”
믿을 수 없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듣도록 강요하며 내 입을 틀어막은 블라드의 손을 깨물려고 애썼지만, 마치 바보같이, 뱀파이어의 피를 보는 것이 바로 악마를 부추기는 꼴이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블라드가 내 몸을 더욱 바싹 조여 왔다.
“어린아이들은 순수한 내적인 힘이오, 나바로 씨. 우리 생명력의 일부분은 각각의 어린아이 안에 집중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 힘을 낭비하고 있어요. 우리는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고자, ‘사회에 유익한’ 일꾼이 되고자 한단 말이오.”
블라드가 무시무시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쓸모없는 잡담일 뿐이야! 내가 방금 전에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해 보고 말해 보시오. 이 모든 거짓말 무더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불안한 운명을 가리고 있는 병풍들이, 즉 우리가 자유업이라고 부르는 정치, 경제, 예술, 그래요, 나바로 씨, 예술을 포함해서, 이 따위 것들이 우둔함과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내가 뭘 실험하는지 알기나 합니까? 당신 딸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면, 여성으로서 매끈한 몸매와 매력을 지니게 되면, 그러면서도 어린 여자아이이기를, 삶과 순수함의 근원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면…….”
블라드가 내 혼란한 마음을 눈치채고 말을 이었다. “아니, 미네아는 결코 자라지 않을 거요. 그 아이는 영원히 밤의 소녀로 남을 거요.”
블라드는 얼굴이 마주하도록 내 몸을 돌려세워 새빨갛게 타오르는 잇몸을, 거울처럼 연마한 상앗빛 송곳니를 드러냈다.
“나는 당신 딸이 자라기를 기다리고 있소, 나바로. 그녀는 나와 함께 이곳에 머물 거요. 내 연인이 될 거요. 언젠가는 내 신부가 되겠지. 그 아이는 뱀파이어로 교육을 받을 거요.”
그 음험한 괴물이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카를로스 푸엔테스, 김현철 옮김, 『블라드』 중에서

아순시온에게서는 피를 빨아 먹고 마그달레나는 데려가겠다는 블라드 백작. 이브는 블라드 백작이 제안하는 ‘영생’에 혹해 그와 거래를 한 아내 아순시온을 설득하려 합니다. 하지만 블라드 백작에게 흠뻑 빠져 버린 아순시온은 콧방귀를 뀌며 이렇게 말하죠. “나는 당신의 평범함을 원하지 않아.” 평범하고 안온한 가정에 들이닥친 위기, 이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0′

으으, 주인공 이브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마지막 부분에서 블라드 백작이 목을 조르며 늘어놓는 긴 독백은 그야말로 횡설수설, 참으로 “믿을 수 없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네요. 그런 터무니없고 무시무시한 일방적인 이야기가 평범한 일상을 환상의 세계로 바꿔 놓는다는 구조가 전에 읽었던 보르헤스·카사레스의 환상 이야기와 똑같아요. 알 수 없는 장광설을 가만 듣다 보면 “정치, 경제, 예술” 그 무엇도 구원할 수 없는 우리의 “우둔함과 죽음”에 빠져든다는 점이요. ㅠㅠ 

현대 라틴아메리카 문단의 거장 중 하나로 꼽히는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20세기 후반 ‘라틴아메리카 소설의 붐’이 일던 시기에 파블로 네루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옥타비오 파스 등과 더불어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선보이며 중남미 역사와 정치 사회를 아우르는 작가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환상적인 세계를 그리는 작가로 다양한 문학성 성취를 이룬 멕시코의 대표 지식인이다.
『블라드』는 2004년에 발표된 단편집 『불안 사회』에 포함되었던 단편을 2010년 따로 떼어 내 재출간한 작품으로, 푸엔테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출간한 단행본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그는 인구 백만이 넘는 코스모폴리스 멕시코시티로 이주해 온 동유럽의 전설 속 인물 ‘뱀파이어’와 ‘꼬챙이 황제 체페슈’에 대한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현한다. 중심 이야기는 우아하면서도 등에 식은땀을 솟게 하는 공포 소설의 형식을 빌려 진행되고, 그 안에서 다시 죽음에 대한 정치 사회적인 성찰이 섬세하고도 냉혹하게 전개된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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